[서형욱의 뷰티풀게임] 리버풀의 '빅 클롭' 플랜이 시작됐다
[서형욱의 뷰티풀게임] 리버풀의 '빅 클롭' 플랜이 시작됐다
[뷰티풀게임=서형욱] 리버풀이 새로운 감독을 들였다. 로저스 감독이 자리에서 물러난 지 나흘만에 독일인 위르겐 클롭을 사령탑에 앉혔다. 계약 기간 3년에 EPL 감독 최고 수준의 급여. 그야말로 초특급 영입이다. (리버풀 입단식의 위르겐 클롭 감독. 크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도르트문트 감독직에서 스스로 물러난 클롭은 이후 조용히 휴식을 취해왔다. '무직' 감독 가운데 가장 주가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던 클롭의 잠행은 길지 않았다. 위기에 처한 리버풀이 내민 손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클롭은 취임 일성으로 "리버풀이 4년 안에 리그 우승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 전 세계 축구팬들은 마인츠와 도르트문트에게 클럽 최고의 전성기를 안겨줬던 그가 리버풀에서도 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것인지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한결같은 '빅' 클롭, 감독을 믿는 리버풀
193cm의 거구인 '빅' 클롭 감독은 한마디로 뚝심있는 지도자다. 우선 그는 1989년부터 2001년까지 마인츠 한 클럽에서만 12년간 선수 생활을 한 '원-클럽 맨'이다. 당시 마인츠는 줄곧 하위 리그에만 머물렀던 팀이다. 화려했던 선수 경력이라 보기는 힘들다. 수비수와 공격수를 오가며 묵묵히 선수 생활을 이어간 셈이다. 선수에서 은퇴한 뒤엔 감독 데뷔도 마인츠에서 했다.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대학에서 체육 관련 학위를 따는 등 지도자 준비를 병행했던 그는 2001년 축구화를 벗은 직후 마인츠 감독에 부임했다. 그리고 2004년에는 마인츠를 처음으로 분데스리가로 승격시켰다. 이후 2008년 도르트문트로 옮겨 지난 여름까지 근무했다. 클롭은 1967년생으로 한국 나이로 치면 마흔 아홉 살이다. 그런데 리버풀이 고작 세 번째 직장이니, 이직이 잦은 요즘 축구계, 아니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참 진득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리버풀은 감독을 쉽게 내치는 팀이 아니다. 123년 역사 동안 리버풀 감독을 맡았던 인물은 18명에 불과하다. 두 차례에 걸쳐 팀을 맡았던 조지 패터슨과 케니 달그리시의 임기를 각기 나눠 포함시켜도, 클롭은 21대 감독에 해당된다. 팀을 쉽게 옮기지 않는 감독과, 감독을 쉽게 내쫓지 않는 클럽. 요즘처럼 모든게 빠르게 움직이는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최적의 조합이다. 클롭이 리버풀에 최적이라 말하는 이유는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앞으로 나열할 리버풀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클롭은 두루 탁월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클롭은 지도자 경력을 통해, 가진 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던 팀들을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해 성과를 내는 팀으로 변모시켰다. 선수단을 이끄는 리더십, 끊임없는 연구와 적용, 그리고 능숙한 미디어 대응을 통한 여론전에 이르기까지, 위기의 리버풀이 갈구하는 역량을 골고루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외국인이라 능숙하지 않은 영어에 대한 우려를 입단식에서 단 한 마디로 일축한 것을 보라. "나는 (스페셜원이 아닌) 노말 원, 평범한 사람이다." 리버풀 안팎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드높다.
(사진 : 2004년, 마인츠를 분데스리가로 승격시킨 직후의 위르겐 클롭 감독)
어쩌면 리버풀은 클롭에게 안전한 선택지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클롭은 세계 정상급 팀들에 빈 자리가 날 경우 누구나 1순위로 고려할 채용 후보였다. 하지만 그는 리버풀을 택했다. 자신이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는 팀, 그리고 찬란한 과거의 영화를 모두가 기억하고 있는 팀이라는 점은 클롭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였을 것이다. 1992년 EPL 설립 이후 단 한 차례도 리그 정상에 오르지 못했던 리버풀의 곤란은, 클롭에게 부담이 아닌 도전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빅 클롭' 감독이 리버풀을 다시 명실상부한 '빅 클럽'으로 되돌려놓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 리버풀의 문제점을 돌아보는 것으로 얘길 풀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리버풀의 문제, '빅 클롭' 플랜의 시작 - 4가지 과제와 기대
첫째, 계속되는 영입 실패다. 리버풀은 이적 정책을 바꿔야 한다. 한 마디로 정의하면, B급 여럿이 아니라 A급을 잘 추려 데려올 수 있는 팀이 되어야 한다. 중위권이 아닌 상위를 노리는 팀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리버풀은 돈 없는 팀이 아니다. 영국의 컨설팅회사 딜로이트가 매년 발표하는 '풋볼 머니 리그'에서 리버풀은 2014년 랭킹 9위에 올랐다. EPL에선 5번째지만, 맨시티, 첼시, 아스널과의 격차가 별로 크지 않다. 지난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올랐던 유벤투스(이틸리아)보다는 매출 규모가 크다. 하지만 리버풀은 돈은 돈대로 쓰고 데려오는 선수의 퀄리티는 경쟁팀에 뒤지는 경우가 많았다.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이 문제라고 하기엔 반복된 실패가 너무 잦다. 올 여름에 새로운 선수들을 데려오는 데에 쓴 돈이 1천 억원을 넘어가는데 팀의 수준은 그대로다. 독일 호펜하임의 호베르투 피르미누와 애스턴 빌라의 크리스티앙 벤테케, 사우스햄턴의 나다니엘 클라인, 이 세 선수에게 쓴 돈만 1천 억원에 달하는데 이들은 값어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가치보다 높은 금액을 들였지만, 막상 팀에 합류한 그들은 그 가치만큼의 영향력도 아직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쓰면서 검증된 거물이 아닌 실패 확률이 적은 선수를 고르는 것은, 우승 내지는 TOP4 진입을 노리는 클럽에게 걸맞지 않는 방식이다. 하지만 리버풀은 이러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토레스를 팔고 앤디 캐롤을 영입한다거나, 수아레즈를 팔고 램버트-오리기-발로텔리를 뭉터기로 영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비교적 적은 돈으로 장래성 풍부한 선수를 (단장과 협의해) 성공적으로 영입했던 클롭의 경험이, 이런 방식의 이적 시장 실패를 최소화시킬 수 있다. 욕심과 달리 챔스권 팀이 아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낭비되는 잉여 선수들을 정리하는 것도 겨울 이적시장이 오기 전부터 고려해봐야 한다. 한편으론 도르트문트에서 클롭이 어떤 선수를 데려올 지도 관심사로 꼽힌다. (카가와 신지? 마르코 로이스?)
둘째, 제라드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다. 대체 선수를 찾는 것, 혹은 그렇게 영향력이 큰 선수가 필요하지 않은 전술을 쓰는 것은 오히려 쉽다. 하지만 그런 리더의 공백은 분명 큰 타격이다. 리버풀의 지난 10여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제라드'의 시대였다. 울리어, 베니테스, 달글리시, 호지슨, 로저스 등의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지만, 팀의 중심은 늘 변함없이 스티븐 제라드였다. 하지만, 그가 자서전에서 "내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다고 돌이킨, 2013/14시즌 막판의 첼시전에서의 실수로 '리그 무관'인 채 EPL을 떠나면서, 리버풀은 지금 '리더 부재'이자, '노바디(nobody)의 시대'를 건너는 중이다. 따라서 제라드의 빈 자리를 메워줄 인물의 등장을 염원하는 리버풀 팬들, 혹은 현지 언론들의 기대는 당연할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 '후계자'가 꼭 선수가 될 필요는 없다. 클롭 선임은, 어쩌면 그 해답이 될 지 모른다. 우리는 이미 도르트문트가 지난 7년 동안 '클롭의 시대'였던 것을 보아오지 않았나. 팀 장악력이 뛰어난 그가 팀의 리더이자 구심적 역할까지 제대로 해준다면, 리버풀은 보다 빠르게 다시 상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다. 맨유가 선수가 아닌 퍼거슨의 시대로 세계 축구계를 풍미했던 것처럼, 감독의 리더십이 팀 전체를 이끌고 좌우했던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어쩌면 선수 한 명의 영향력이 과도한 것은, 어쩌면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다른 여러 팀들이 그러한 것처럼. 리버풀이 새 감독 중심으로 다시 뭉친다면 새로운 시대에 도전할 수 있다.
셋째는 '괴물' 수아레스의 공백이 여전한 공격진의 재구성이다. 토레스와 수아레스라는 걸출한 스트라이커 개인의 역량에 의존했던 시기를 제외하면, 21세기의 리버풀은 늘 공격진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울리어 감독 시절 오웬과 헤스키를 짝지어 경쟁력을 갖췄던 시대 이후, 리버풀은 늘 에이스 공격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팀이다. 클롭은 이 부분에서 해법을 기대할 수 있는 감독이다. 도르트문트 감독 시절, 클롭은 공격진 구성에 늘 해법을 제시해왔다. 지난 시즌, 레반도프스키의 공백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라모스, 임모빌레 등을 거액에 데려오고도 제대로 써먹지 못해 전반기 극도의 부진을 겪긴 했지만 그 직전의 루카스 바리오스가 코파아메리카 부상으로 나가 떨어지자 백업인 레반도프스키를 끌어올려 지금의 그가 있게 만든 것이나, 오바메양을 분데스리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자리잡게 한 과정에는 모두 클롭이 있었다. 개성이 강한 로이스와 괴체, 카가와의 최대치를 끄집어낸 것도 클롭의 몫이었다. 리버풀이 보유한 재능있는 공격수들도 클롭 체제에서 다시 상승세를 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넷째는 팀웍의 부재, 그리고 팬들의 실망감을 동시에 해소하는 것이다. 리버풀은 지금 유례없이 긴 '무관'의 시대를 살고 있다. 리버풀은 어쩔 수 없이 꿈이 큰 클럽이다. 7,80년대의 그 화려했던 시기를 체험했던 이들이 여전히 대부분 살아있는 시대다. '빅 클럽'이란 말로도 설명이 아쉬운, '빅게스트 클럽'의 자부심이 20여년의 리그 무관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유럽을 마지막으로 제패한 지도 벌써 10년, 그리고 리버풀의 명문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완장을 팔에 새긴 것처럼 뛰던 '아들' 제라드도 팀을 떠난 직후. 팬들의 무력감은 리버풀이 지금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다. 이 지점에서 클롭에게 거는 기대는 높아진다. 클롭의 손 동작 하나에 도르트문트 수 만 관중이 열광하던 장면은, 리버풀 '콥' 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리고 클롭 특유의 스킨십. 그러니까 경기 중의 강렬한 제스쳐와 상반되는, 모든 선수들과 수시로 교환하는 물리적 스킨십은 클롭이 이 조각난 팀을 다시 '원 팀'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중요한 단초로 꼽힌다. 클롭과 일했던 선수들은 팀을 떠난 뒤에도 다시 그를 그린다. 부상으로 이탈해 있던 시절 레반도프스키에게 주전을 빼앗겼던 파라과이 공격수 루카스 바리오스는, 지난해 도르트문트가 극도로 부진하던 시절 "클롭이 내가 필요하다면 당장 달려가겠다"고 말했다. EPL 진출 뒤 고전하던 카가와 신지를 향해 "맨유가 카가와를 제대로 써먹지 못한다"며 걱정하던 클롭은, 지친 카가와를 다시 받아들여 도르트문트에서 부활하게 만들어줬다. 그 밖의 여러 사례들은 클롭이 단지 기자회견장에서의 몇 마디 말로가 아닌, 선수들과의 관계를 통해 팀웍을 유지시키는 탁월한 역량을 가진 인물이라는 평가에 힘을 실어준다.
이런 저런 이유로 클롭에 대한 기대가 높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부담을 긍정의 힘으로 성과로 연결지을 능력을 갖고 있는 감독이다. 오랜 경험, 적절한 휴식, 그리고 팀에 필요한 능력을 두루 보여줬다는 점에서 클롭과 리버풀의 만남은 매우 인상적인 결합이다. 그래서 다시 리버풀은 꿈을 꾼다. 빅4를 너머 유럽으로 나아가는, 그리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다시 라이벌 모두를 지나 맨 앞에서 달리는 상상을. 클롭은 그러한 꿈을 능히 현실로 바꿀 수 있는 감독이다. 올 시즌 EPL은 여러모로 더 재미있어질 것 같다. '스페셜 원'과 '노말 원'의 대결을 비롯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