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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간절했던 권혁, 그만큼 혹사 당했다

Doctrine_Dark 2016. 9. 23. 00:01





 

권혁은 기회가 간절했다. 책임감도 강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마운드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 화답한 건 혹사였다. 최근 권혁은 팔꿈치 통증으로 1군에서 말소됐다(사진=한화)권혁은 기회가 간절했다. 책임감도 강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마운드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 화답한 건 혹사였다. 최근 권혁은 팔꿈치 통증으로 1군에서 말소됐다(사진=한화)

[엠스플뉴스]  

 

기회가 간절했고, 마운드에 서는 것이 행복했던 투수였다. 또 그만큼 책임감이 강했다. 통증이 경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탄스러운 건 2년 동안 묵묵히, 그리고 불평 없이 제 역할에 최선을 다했던 선수가 오히려 더 보호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혹사의 방식은 늘 같은 식이었다. 간절했기에 명령대로 최선을 다했고, 결국엔 다시 기회를 잃는 통한의 구조다. 

 

‘공을 던지고 싶었던 투수’를 절대권력은 악용했다. ‘팀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벌어진 일들. 감독의 권위로 무분별한 출전이 이뤄졌다. 거기엔 납득할만한 ‘근거’나 ‘명분’도 없었다. 지고 있는 상황, 점수 차가 큰 상황, 며칠 동안 많은 공을 던진 상황. 그 모든 것이 마구잡이로 뒤섞였다. 막무가내로 휘둘렀던 전가의 보도는 날이 상하고 말았다. ‘선한 자’와 ‘상대적 약자’를 상대로 벌어진 독선과 아집, 횡포의 단면이다.

 

8월 24일 한화 불펜투수 권혁이 1군에서 말소됐다. 사유는 팔꿈치 통증. 권혁은 훈련 직후 갑작스럽게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우, 에스밀 로저스, 배영수, 안영명, 송은범, 장민재. 올 시즌 줄부상 당한 팀 내 투수들에 이어 권혁마저 이탈한 충격적인 상황이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는 날 선 지적도 쏟아지고 있다. 올 시즌을 포함해 최근 2년간 권혁의 부담이 혹사였다는 근거로 나온 주장이다. 

 

지난해 구위저하 사례, 부상위험 망각했나? 

 

권혁은 2015년 후반기 피로에 따른 구위 저하의 위험 신호를 받았다. 그러나 올 시즌에도 엄청난 수준의 이닝을 소화해야만 했다(사진=한화)권혁은 2015년 후반기 피로에 따른 구위 저하의 위험 신호를 받았다. 그러나 올 시즌에도 엄청난 수준의 이닝을 소화해야만 했다(사진=한화)

 

 

권혁은 올 시즌 6승 2패 3세이브 13홀드 평균 자책 3.87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 기록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등판 경기와 이닝이다. 권혁은 한화가 치른 112경기 중 절반이 넘는 66경기에 등판해 무려 95.1이닝을 던졌다. 리그 최다 등판이자 불펜 최다 이닝 1위 기록이다. 이는 선발과 구원을 통틀어서도 리그 최다 이닝에서도 27위에 해당한다. 

 

범위를 확장해 최다 이닝 44위까지 투수들 가운데서도 선발 등판이 없는 선수는 권혁밖에 없다. 한마디로 권혁은 구원 투수중에선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선발투수와 거의 근접한 공을 던졌다는 뜻이다. 

 

불과 올 시즌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4년 삼성 소속으로 34.2이닝·554구 을 소화했던 권혁은 2015년 112이닝·2,098구 에 이어 올 시즌도 95.1이닝·1654구를 던졌다. 

 

권혁의 이번 이탈이 더욱 위험한 신호로 읽히는 건 지난 시즌 후반기에 이어 다시 '구위 저하의 적신호'가 떴기 때문이다. 권혁은 2015년 전반기까지 50경기에 등판해 76.1이닝을 소화했다. 전반기가 채 끝나지 않았음에도 투구수가 1,369구에 달했다. 당시 한화가 치른 전반기 경기수는 84경기. 실제 등판하지 않고 몸만 푼 경기, 실전에 나서기 전 불펜 투구까지 합치면 권혁의 과부하는 말도 못하게 심했다.

 

결국 전반기 막바지부터 권혁의 과부하는 완연한 구위 저하로 이어졌다. 평균 속구 구속이 시속 3~5km 이상 줄었고 공 끝도 밋밋해졌다. 전반기 4.01이었던 평균자책도 껑충 뛰었다. 후반기 평균자책이 7.07에 달했다. 많은 이가 “더는 위험하다”며 경고를 보냈지만,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2015시즌 권혁을 끝까지 등판시켰다. 

 

2016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전반기 많은 경기와 이닝을 소화했음에도 후반기 31경기 가운데절반이 넘는 16경기에 권혁을 등판시켰다. 그 가운덴 점수 차가 상당히 벌어진 경기가 있었고, 뒤지는 경기도 있었다. 만약 지난해 후반기의 교훈이나 선수 몸 상태에 대한 우려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쉽게 일어날 수 없는 기용 방식이었다. 

 

삼성 시절 막바지, 믿음과 기회가 간절했던 권혁

 

삼성에서 기회를 잃었던 권혁은 던질 수 있는 장소를 찾아 한화로 왔다. 마운드에서 던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사진은 입단식 장면. 공교롭게도 2015시즌을 앞두고 한화에 입단한 3명의 투수는 입단 후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사진=한화)삼성에서 기회를 잃었던 권혁은 던질 수 있는 장소를 찾아 한화로 왔다. 마운드에서 던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사진은 입단식 장면. 공교롭게도 2015시즌을 앞두고 한화에 입단한 3명의 투수는 입단 후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사진=한화)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자. 권혁이 왜 이토록 열심히 마운드에 올랐는지 알려면 시계를 돌릴 필요가 있다.

 

2014년 1월 삼성의 괌 스프링캠프. 권혁은 캠프 기간 누구보다 진지했다. 사뭇 비장하기까지 했다. 권혁은 세대교체 중이던 삼성 마운드의 한참 어린 후배들과 함께 30도 무더위 속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열심히 훈련했다. 

 

당시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권혁은 "2013년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 이후 재활을 잘 하고 있다"며 “지난해를 돌이켜 보면 ‘기회’와 ‘신뢰’가 사라진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2013년 권혁은 52경기에 출전했지만 이닝은 36.1이닝에 불과했다. 원포인트 릴리프로 나오거나 안타나 볼넷 이후 곧바로 교체되는 일도 잦았다. 강력한 경쟁력을 자랑하던 삼성 불펜에서 말 그대로 자신의 자릴 잃은 것이었다. 권혁은 “지금 가장 간절한 건 마운드에서 던지는 일”이라며 “내 자릴 찾고 싶다”는 강한 바람을 전했다. 

 

당시 권혁이 느낀 마음의 상처와 굴욕감, 또 재기의 의지는 대단했다. 

 

그러나 2014년 권혁은 2006년(12경기) 이후 가장 적은 경기(38경기)와 이닝(34.2이닝)을 소화하는 데 그쳤다. 결국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자 권혁은 '삼성 둥지'를 박차고 나왔다. 당시 그가 바랐던 것은 좋은 대우가 아닌 기회였다. 그리고 권혁은 김성근 감독의 러브콜을 받고, 한화와 FA 계약을 맺으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푸른 색 유니폼이 피부처럼 익숙했던 권혁에게 '현역 생활 제 2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후 권혁은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 ‘지옥훈련’으로 불렸던 한화의 강도 높은 캠프 훈련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시즌 들어서도 거의 경기마다 나오다시피 했다. 전반기에만 무려 50경기에 나와 76.1이닝 동안 1,369구를 던지며 혹사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히 등판 간격은 비정상적인 수준이었다. 한화가 전반기 84경기를 치른 것을 고려하면 약 60%에 가까운 경기에 등판한 셈이었다. 

 

보람도 있었다. 만년 하위권에 머물던 한화 팬들은 팀이 5위로 전반기를 마치자, 그 공을 권혁에게 돌리며 열광했다. 권혁 역시 '원 없이 던지고 싶다'는 마음의 한을 풀었는지 벅찬 표정을 지었다. 

 

기회가 간절했던 권혁은 지난해에 이어 올 시즌에도 몸을 아끼지 않았다. 거기엔 거역할 수 없는 무소불위, 김 감독의 지시를 어길 수 없다는 현실적인 점도 영향을 미쳤을 터다. 그렇게 권혁은 ‘혹사’의 수렁 속에 점점 빠져 들어갔다.

 

자랑스러운 선수·가장 책임감 짊어졌던 권혁 

 

 

 

권혁 또한 한화에서 행복했다. 과거형일지 모르겠지만, 분명 그랬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2015년 올스타 브레이크. 권혁은 전반기 맹활약을 바탕으로 올스타에 선발됐다. 그리고 6세 딸과 4세 아들을 대동하고 올스타전에 나섰다. 이날만큼은 ‘혹사의 주인공’이 아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된 권혁은 평소 무뚝뚝한 얼굴이 아닌 밝은 표정으로 ‘아빠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날 권혁은 “힘들지만 아직은 버틸 만 하다. 괜찮다. 팬들의 이런 성원과 환호, 나를 믿어주는 분들의 신뢰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새삼 느꼈다. 감독님께서도 믿고 맡겨주시니 감사하다. 그래서 꼭 내 역할을 다 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권혁은 “아이들하고 평소에 잘 놀아주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 (올스타전에) 데려왔는데 재밌어 하는 것 같아 나도 기분이 좋다. 커서 이걸 기억할 진 모르겠지만, 아이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하나 쌓게 해준 것 같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2014년 1월. “아이들에게 내가 1군에서 뛰는 모습, TV에 나오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던 권혁은 2015년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된 것에 행복해 했다. 그러나 같은해 후반기 다시 만난 권혁은 연이은 부담에 신음했다. 그때도 권혁은 “힘들다”는 내색이나 누구를 향한 원망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았다. 묵묵히 “내 역할을 할 뿐”이라며 되레 말을 아꼈다. 다만, 그의 얼굴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2016시즌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이가 김 감독의 비상식적인 운용을 지적하는 상황에서도 권혁은 침묵하며 꿋꿋하게 제 자릴 지켰다. ‘못하겠다’거나 ‘힘들다’는 말이면 피할 수 있었던 상황도 스스로 감내했고 감독의 지시가 떨어지면 또 마운드에 올랐다. 권혁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는 김 감독 체제서 늘 그래왔듯이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2년간 비상식적인 혹사 당한 권혁

 

단 2년 간 통산 커리어에서 경험하지 못한 많은 이닝과 투구수를 소화했다. (사진=엠스플뉴스 박동희 기자)권혁은 최근 2년 간 통산 커리어에서 경험하지 못한 많은 이닝과 투구수를 소화했다(사진=엠스플뉴스 박동희 기자)

 

권혁은 2002년부터 2014년까지 512경기서 580이닝 9,868구를 던졌다. 그런데 한화에서 2년도 채 되지 않아 207.1이닝 3,752구를 소화했다. 통산 656경기 787.1이닝 투구수 13,620개의 기록에서 한화의 지분이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난 수준이다. 14 시즌 중 단 1.8시즌 정도만을 한화서 뛰면서 통산 등판 경기수의 22%, 통산 이닝의 26.3%, 통산 투구수의 27.5%를 소화한 셈이다. 

 

권혁은 2015년부터 2016년 8월 24일까지 리그 최다 이닝 20위를 기록했다. 53위까지의 투수들 선발 등판이 전무한 투수는 권혁이 유일하다. 3000개 이상의 투구수를 기록한 투수 중 순수 구원 투수 역시 권혁뿐이다. 

 

구원투수인 권혁은 최근 2년간 데이터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부담을 어깨에 짊어져야만 했다. 이것을 ‘혹사’가 아니라고 한다면 무엇을 혹사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아직 괜찮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나오는 많은 이상 징후는 위기를 말하고 있다. 이번 권혁의 말소는 ‘모두가 혹사를 당하고 있다’며 구성원의 희생을 정당화하고 은폐하는 시스템 속에선 더욱 경각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적신호다. 또 다른 제 2, 제3의 신호를 막기 위해, '권혁'이란 좋은 투수의 선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이젠 구단 수뇌부와 야구계가 나서야 한다.

 

‘엠스플뉴스’의 보도를 통해 김민우의 어깨 와순관절 손상 사실이 알려진 직후 김 감독은 소속팀 구성원의 부상 소식에 대한 유감이나 안타까움의 표시나 해명은 전혀 없이 “한 해에도 부상을 당하는 투수들은 많다. 도대체 혹사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묻고 싶다”고 퉁명스럽게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기에 넥센의 투수 부상자들을 언급하며 논점을 흐리기도 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넥센의 투수들은 많은 투구수와 이닝을 소화했더라도 체계적인 투구수와 등판 간격의 관리 속에 경기에 나왔다는 점이다. 또한 염경엽 넥센 감독은 원인여하를 따지지 않고 일단 책임을 통감하며 선수와 팬들에게 사죄했다. 

  

이번 권혁의 팔꿈치 통증 역시 정확한 원인 규명이나 김 감독의 의식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향후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김원익 기자 one2@mbcpl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