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라리가 이슈] 3조5천억 vs 4천억 라 리가 개악인가, 개혁인가? by 박문성
레알과 호날두의 시장 독점 ⓒgettyimages/멀티비츠 |
라 리가는 과연 중단 될 것인가?
유럽 빅 리그 중 하나인 스페인 라 리가에 파업 움직임이 일고 있다. 스페인축구협회는 하루 전 성명을 내고 “(스페인) 정부가 내놓은 개혁안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다가오는 5월16일 이후 예정된 모든 경기를 무기한 연기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스페인축구협회의 줄임말인 RFEF는 Real Federacion Espanola de Futbol의 약자로 스페인의 축구 행정 전반을 지휘, 총괄하는 기관이다. 우리로 하면 대한축구협회와 같은 조직이다. 이 같은 스페인 축구의 최상급 기관이라 할 수 있는 스페인축구협회가 경기의 전면 보이콧을 선언하고 나서면서 스페인 축구계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스페인축구협회의 파업 결의가 실제 이루어진다면 올 시즌 라 리가 우승 경쟁의 분수령으로 꼽히는 5월17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경기, 5월30일 코파 델 레이 결승전 바르셀로나와 애틀레틱 빌바오 경기 등이 줄줄이 미루어지게 된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총괄하는 스페인축구협회의 파업이 실행된다면 리그 일정은 물론 스페인 축구 전반의 커다란 혼선이 불가피해지는 것이다. 스페인 현지에서는 스페인축구협회의 파업이 실제 진행된다면 17개 지역 축구협회와 3만의 경기, 60만 명의 축구선수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스페인축구협회가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놓을 수도 있는 파업까지도 불사하겠다고 나선 것일까?
문제의 발단은 스페인 정부가 지난달 말인인 4월30일 내놓은 스페인 축구 개혁안이다. 스페인 정부는 국무회의를 거쳐 스페인 프로축구팀들의 TV 중계권 수입과 관련한 새로운 법령을 발표했다. 개정 내용의 요지는 각 프로팀들이 개별적으로 계약을 체결하던 TV 중계권을 리그 단위로 하나로 통합해 일괄 계약하겠다는 것이다. 1부인 라 리가 뿐만 아니라 2부인 세군다 디비전까지 묶어 하나의 패키지로 TV 중계권 계약을 체결해 전체 수입을 구단들에 나누어주겠다고 하는 것이 핵심이다. 스페인 정부는 이 같은 개혁안을 논의를 거쳐 손질해 2016년부터 적용키로 했다.
유럽 4대 리그 중 라 리가만 홀로
개별 계약에서 통합 계약으로 개혁
주요 리그 TV 중계권 및 수입금 배분 원칙 |
사실 스페인 축구계의 TV 중계권 문제는 오래된 논쟁이자 풀어야 할 숙제였다. 유럽의 4대 빅 리그(스페인, 독일, 잉글랜드, 이탈리아) 중 TV 중계권을 구단별로 방송국과 따로 계약을 체결하는 곳은 스페인 라 리가가 유일하다. 독일과 잉글랜드, 이탈리아는 모두 리그 전체 패키지로 일괄 협상한다. 한 팀 것만은 살수 없고 사려면 리그를 통으로 다 사야 하는 것이다. 팀별 경쟁력과 시장 논리에 맞춰 알아서 개별 계약하는 라 리가 방식은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와 같이 방송국들이 제 발로 찾아오는 구단들엔 대박의 기회를 주었지만 그 나머지 구단들엔 계약 자체를 맺는 데 매우 큰 고충을 주었다. 방송국들 입장에서는 별다른 제재나 제도가 따로 마련돼 있지 않은 가운데 합법적인 틀 속에서 시청률이 보장되는 바르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와 같은 빅 클럽만을 쫓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TV 중계권료는 폭등했다. 공급은 한정돼 있는데 수요가 집중되니 당연한 결과였다. 자본과 채널이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로 집중되면서 나머지 라 리가 18팀들의 ‘차별 현상’은 뚜렷해 졌다. 이번 시즌만 해도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TV 중계권료로 벌어들인 수입은 각각 1억6000만유로(1953억 원)이지만 바로 다음으로 많은 돈을 번 발렌시아의 중계 수입은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5000만유로(610억 원)였다.
TV 중계권 개별 계약의 폐해는 직접적인 부의 편중만이 아니었다. 본질적으로 ‘노출’의 차이가 현격하게 벌어지면서 중소 클럽들은 구단의 가치와 상품성을 제고할 기회조차 잡기 힘들었다. 결과적으로 부와 노출의 편중은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2강과 나머지 팀들 간의 격차가 극심하게 벌어지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부의 심각한 편차로 시장 전체가 흔들리고 일부는 고사해 쓰러지는 위기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됐던 것이다. 소수는 너무나 잘 나가는데 다수는 시장에서 버티고 있기조차 힘든, 그래서 시장 전체가 붕괴될 수 있는 위기의 신호였다. 이 같은 라 리가의 심각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미국의 경제 주간지 포브스가 어제 발표한 2015년 세계 축구클럽 자산 가치 순위에서도 알 수 있다.
포브스에 따르면 2015년 세계에서 가장 자산 가치가 높은 축구클럽은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다. 레알 마드리드의 자산 가치는 32억600만 달러다. 우리 돈으로 하면 3조5550억 원이다. 레알 마드리드에 이은 2위도 라 리가 팀이다. 바르셀로나로 31억6000만 달러(3조4460억 원)의 자산 가치를 기록했다. 그 다음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31억 달러(3조3806억 원) 바이에른 뮌헨 23억5000만 달러(2조5627억 원) 맨체스터 시티 13억8000만 달러(1조5049억 원) 순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막대한 자산 가치와 세계적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수치이지만 한편으론 라 리가가 직면해 있는 절벽에 가까운 불균형 사태를 절감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2015년 세계 축구클럽 자산 가치 상위 20위 안에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말고 이름을 올린 스페인 클럽은 한 팀뿐이다. 잉글랜드가 상위 20팀 중 8팀, 이탈리아가 4팀 올라 있는 것과 비교하면 숫자가 적지만 보다 크고 본질적인 문제는 그 격차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다음으로 자산 가치가 높은 라 리가 클럽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자산 가치는 4억3600만 달러(4755억 원)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와 비교하면 8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큰 격차 없이 매우 촘촘하게 중상위권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나 최대치로 놓고 보더라도 4배를 넘지 않는 독일 분데스리가의 팀 별 격차와 확연히 차이가 나는 라 리가의 빈부차다.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와 시장 절벽
스페인축구협회는 왜 반대하고 있는가?
포브스 발표 2015년 세계축구클럽 자산순위 20위 |
잘 나가는 팀은 물론 나갈 수 있다. 시장 지배자가 돈을 많이 버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지나친 편중이다. 그것도 시장 자체의 존립을 흔들 만큼의 편중이라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돈이 돈을 부르는 편중이 고장 난 브레이크처럼 계속되다 보면 불균형은 고착돼 되고 심화돼 결국은 돈이란 이름의 절벽에 내몰린 중소 클럽들부터 고사될 수밖에 없다. 돈과 노출 등의 자원과 수단, 기회가 줄어들고 말라붙으면서 자연스레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라 리가 몇몇 구단들은 심각한 재정 위기를 맞거나 선수들의 연봉을 제때에 지급하지 못하는 파산 위기와 직면하기도 했었다. 2011년 등 몇 차례 파업 위기는 그 때문이었으며 일부 선수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 해외로 발길을 돌리는 라 리가 이직 러시가 이어지기도 했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위대하며 또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지만 그들이 발 딛고 있는 토대인 라 리가 전체가 흔들리고 사라진다면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존립 자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시장이 망하면 그 안에서 사고 팔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다.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는 물론 라 리가 전체가 공존하고 공생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했다.
스페인 정부가 이번에 TV 중계권과 관련한 법률 개정안을 내놓은 배경이다. 스페인 정부의 개혁안은 각 팀들에게 고르게 TV 중계권 수입이 배분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방식에 가깝다. 일단 1부와 2부 리그 TV 중계권을 통합해 판매한 뒤 그 수익금을 1부 90%, 2부 10% 방식으로 나누기로 했다. 1부 리그는 수익금 중 50%는 20팀 전체가 균등하고 나눠 갖고 나머지 50%는 성적과 클럽 규모에 따라 차등 분배할 계획이다. 2부 리그는 수익금의 70%는 균등 분배, 30%는 차등 분배한다. 참고로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는 국내 TV 중계권 중 50%는 모든 클럽들이 똑같이 나누고 나머지 50%는 순위(25%)와 중계 횟수(25%)에 따라 차등 분배한다. 전체적으로 고르게 나누는 프리미어리그의 방식은 지난 시즌 기준 TV 중계권료 최고 수익 클럽 리버풀(9666만 파운드)과 최저 수익 클럽 카디프(6210만 파운드)의 차이를 얼마 나지 않게 했으며 이 같은 안전장치는 리그 전체의 시장 안정과 돈의 회전율 상승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이번 시즌 이적 시장에서 라 리가에 두 배가 훌쩍 뛰어 넘는 12억1000만유로(1조4376억 원)라는 엄청난 돈 보따리를 풀 수 있는 배경 중 하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스페인 정부 안의 핵심은 TV 중계권을 구단별로 따로 팔지 말고 다 같이 하나로 묶어 비싸게 팔자는 것이다. 통합 마케팅의 방법인데 이렇게 묶어 팔면 전체 수익금이 늘어나는 효과가 가능하다. 안 팔리는 상품을 잘 팔리는 상품에 묶어 팔아 재고를 정리하고 전체적으론 판매량이 증가하기 때문에 가능한 효과다. 안 팔리던 상품이 팔리고 알려지다 보면 없던 자체 경쟁력 또한 생길 수 있다. 스페인을 제외한 유럽의 빅 리그들이 TV 중계권을 하나 같이 묶어 판 이유기도 하다. 스페인 정부는 이번 개혁안으로 현재 연간 7억5500만 유로(9208억 원)에 이르는 라 리가의 TV 중계권료가 10억 유로(1조2197억 원) 이상으로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것은 전체 수익을 끌어올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개별 계약 과정에서 받았던 TV 중계권 수입을 어느 선까진 보존해주면서도 나머지 클럽들에겐 더 많은 수입을 보장해주기 위한 계산이다. 듣기에는 모두 득을 볼 수 있는 안 같은데 스페인축구협회는 파업까지 불사하겠다고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이율까?
스페인프로축구연맹의 파업 반대는 또 왜?
K리그 중계권 개혁 사례 될 수 있을까
바르셀로나와 레알에게만 집중된 TV ⓒgettyimages/멀티비츠 |
스페인축구협회의 반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는 분배 방법이다. 정부의 안은 전체 수익 중 90%를 1부, 10%를 2부에 나눠 지급하는 것이다. 스페인축구협회는 이 대목에서 2부에 내려 보내는 돈이 너무 적다고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이 TV 중계권 수익 중 1부에 79%, 2부에 21%를, 프랑스가 1부에 80%, 2부에 20%를 주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스페인의 정부 안은 2부 리그에 불리한 분배 원칙이다. 2부 리그에 주는 액수와 함께 전체적으로 아마추어 축구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것이 스페인축구협회의 불만이다. 두 번째는 축구계 문제와 이슈를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과 불안이다. 스페인축구협회가 있는데도 축구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관련 법률을 밀어붙였다고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축구계 개혁을 주도하다 보면 그 방향이 엉뚱해질 수 있고 또 수익 중 일부가 축구와 무관한 곳에 쓰일 위험이 있다는 불신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스페인축구협회다. 현지에선 구체적 돈의 분배보단 이러한 개혁의 주도권 즉 헤게모니를 어느 쪽에서 쥘 것인가를 놓고 스페인축구협회가 반발하는 큰 이유로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스페인축구협회의 파업 불사의 저항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스페인 프로축구리그를 관장하는 또 다른 축구단체인 스페인프로축구연맹(LFP)은 이번 정부 개혁안을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LFP는 정부의 개혁안에 이견은 없으며 따라서 스페인축구협회의 파업 결의에 따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때문에 라 리가 일정이 뒤로 밀리는 일은 없다고도 밝혔다. 스페인프로축구연맹은 우리로 하면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 스페인 프로축구계를 책임지는 조직이다. 스페인축구협회가 전반적인 스페인 축구의 행정과 대표팀 업무를 맡는다면 스페인프로축구연맹은 라 리가 등 프로축구 업무를 집중적으로 맡아 보는 곳이다. 이 두 단체의 의견이 갈리는 건 결국은 이권과 관련한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스페인축구협회와 정부는 주도권 싸움이라는 심리적, 실질적 대립 요소가 있지만 스페인프로축구연맹 입장에서는 정부의 안이 프로팀들에게 돌아가는 수익에는 크게 손대지 않는 가운데 라 리가의 오랜 숙제와 고민을 정부가 나서 풀어주겠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하등 없는 것이다. 스페인프로축구연맹으로서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수익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전체 시장의 규모가 커질 수 있는 구조의 개혁이라는 점에서 적극적인 환영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스페인프로축구연맹이 파업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스페인축구협회의 강공 드라이브가 꺾일 가능성은 크다. 라 리가의 시장질서 왜곡의 심각성을 지켜봤던 여론의 개혁 지지 흐름도 파업 정국엔 걸림돌이다. 선수협회와 감독, 심판 단체들이 스페인축구협회에 지지를 보내주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 1996년부터 이어져온 개인 소득세 52%가 아닌 법인세 30%를 기준으로 선수들이 세금을 냈던 세법과, 구단에서 에이전트에 지급한 수수료를 과거와 달리 일단 선수의 수입으로 잡은 뒤 세금을 물리는 것으로 이번 기회에 정부가 세법까지도 손대려고 하자 선수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란 보도가 나오면서 파업 추진 동력에 힘이 빠진 스페인축구협회다. 물론 이번 개혁의 어찌 보면 당사자이자 큰 손이라 할 수 있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측이 이 과정에서 어떠한 행보를 보여줄 것인가 하는 것은 여전한 변수다.
오랜 세월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라 리가의 TV 중계권 개혁이 이번에는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TV 중계와 관련해 고민이 적지 않은 우리 K리그로서도 눈 여겨 볼만한 라 리가의 개혁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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