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브라질-독일 꺾은 첫번째 아시아 국가!!!

Doctrine_Dark 2016. 2. 21. 00:24

추억① 잠실에서 큰 코 다친 브라질

한국 vs 브라질 날짜 1999년 3월 28일 장소 잠실

결과 1-0 승(득점자: 김도훈)

개최 배경 브라질 축구 대표팀은 나이키와 유니폼 스폰서 계약을 맺은 이후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1994 미국 월드컵 우승 이후 위상이 더욱 높아졌고, 호나우두를 중심으로 스타 선수가 쏟아졌다. 호나우두를 중심으로 한 월드 투어 경기가 본격 진행됐다. 1997년 내한 경기에서는 호나우두가 직접 한국에 와서 뛰기도 했다. 호나우두는 2002년에 월드컵 및 친선전으로 두 번이나 한국에 왔다. 브라질은 1995년, 1997년에 이어 1999년에도 일본과 한국을 동시 방문했다. 1999년에 호나우두는 오지 않았지만 히바우두가 왔다.

경기 내용 한국은 김병지가 골문을 지키고, 김태영, 서동원, 이임생, 홍명보가 수비 라인에 있었다. 황선홍이 공격 최전선에 서고 유상철, 하석주, 신홍기, 노정윤, 김도근이 출전한 정예 멤버였다. 브라질은 사실 히바우두와 카푸 외에 제호베르투, 주니뉴 페르남부카누 등이 뛰었지만 아모로주, 자르데우, 세르지뉴, 오드반 등 2진급 선수가 적지 않았다. 무회전 프리킥으로 유명한 주니뉴는 이 경기가 A매치 데뷔전이었다. 그래도 브라질은 막강했다. 경기를 지배한 것은 브라질이었다. 일본을 상대로는 대승을 거둔 팀이었다.

한국은 끈끈한 수비로 브라질을 괴롭혔다. 결과는 허정무 감독의 교체 카드가 결정했다. 후반전에 투입된 최성용과 김도훈이 후반 추가 시간에 결승골을 합작했다. 홍명보가 수비 지역에서 끊어낸 뒤 전개한 볼을 우측면에서 최성용이 이어 받아 돌파한 뒤 낮은 크로스를 올렸고, 김도훈이 수비 사이로 빠져나오며 감각적인 논스톱 슈팅으로 결정했다. 브라질이 아시아 팀에게 패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

추억② 부산에서 무너진 클린스만의 독일

한국 vs 독일 날짜 2004년 12월 19일 장소 부산

결과 3-1 승 (김동진, 이동국, 조재진/ 발락)

개최 배경 2006 독일 월드컵을 개최하는 독일은 유럽 예선을 치를 필요가 없었다. 전 세계 다양한 팀을 상대하며 담금질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유로2004 대회에서 실패를 경험한 뒤 대대적 쇄신 작업에 나섰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체제로 12월에 아시아 투어 경기 및 전지 훈련을 일정이 잡혔다. 이 시기 독일은 한국 외에 일본과 태국도 방문했다. 16일 먼저 일본에 가서 3-0 승리를 거뒀다. 태국전도 5-1로 크게 이겼다. 한국을 상대로는 쓴맛을 봤다.

경기 내용 독일은 당시 쿠라니, 람, 슈나이더, 슈바인슈타이거, 발락, 클로제, 칸 등이 나섰다. 세대 교체 과정에서 이후 핵심이 된 선수들이 주를 이뤘다. 반면 한국은 차두리 외에 유럽파 없이 이동국, 김동현, 박규선, 김두현, 김상식, 김동진 등 당시 젊은 선수들과 국내파 중심으로 나섰다. A매치 의무 소집 가능일에 경기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독일을 상대로 공격적이고 화끈한 경기를 했다. 김동진의 슈팅으로 전반 16분 앞서갔다.

발락은 중원에서 특유의 파괴력을 보였다. 프리킥으로 동점골을 넣었지만 후반 26분 이동국이 경이로운 발리 슈팅으로 올리버 칸을 꼼짝 못하게 했다. 교체 투입한 조재진이 차두리의 패스를 받아 쐐기골까지 넣었다. 당시 프랑크푸르트에서 뛰던 차두리는 힘과 스피드를 앞세운 돌파력으로 큰 환호를 받기도 했다. 독일이 아시아 팀에 처음으로 패한 경기였다. 나이지리아 축구의 올림픽 금메달을 이끈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은 한국에서 불명예 퇴진했으나 이 경기의 승리는 그의 능력을 입증한 사례였다. 독일은 이 경기 패배로 성찰에 나섰고, 이후 전력 전비 작업에 가속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