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442.knowledge] 너는 나를 잡았어야 했어 10인

Doctrine_Dark 2016. 2. 15. 23:00

그때 그 남자와 그때 그 여자의 공통점은? ‘잡았어야 한다’다. 놓친 막차는 다음날 첫차로 변신해 다시 오지만, 영영 오지 않는 게 세상에는 있다.


예를 들어, 폴 포그바. 유럽 축구에서 가장 뜨거운 스타다. 갑부 클럽들이 군침을 흘린다. 한곳만 빼고. 그를 그냥(?) 보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데려오고 싶다는 말도 못한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무서워서 “아쉽다”라는 말도 못한다.

월드 No.1 풋볼매거진 <포포투>가 전 소속팀 ‘이불킥’하게 만들었던 혹은 만들고 있는 10인을 꼽았다. 전 소속팀 관계자 및 팬은 청심환 먼저 드시길 권해드린다. 

#1. 피에르-에메리크 오바메양 (가봉,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오바메양과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득점왕 경쟁이 치열하다. 현재(21라운드 기준) 레반도프스키(21골)와 한 골 차로 2위다. 오바메양은 리그 21경기 중 20경기에 출전했다. 경기당 한 골씩 넣는 셈이다. 올 시즌 그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분데스리가 최고의 공격수다.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와 레알 마드리드가 ‘애정 가득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AC 밀란은 ‘후회 가득한’ 눈길을 보내고 있을 거다. 지난여름 밀란은 카를로스 바카를 2,100만 파운드(약 369억 원)에 영입했다. 득점력 강화가 이유였다. 사실 이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됐다. 오바메양을 조금만 더 기다려줬더라면 말이다. 오바메양은 밀란 시절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임대 생활(디종FCO, 릴, AS모나코, AS생테티엔)을 전전할 뿐이었다. 2012년 AS생테티엔에 완전 이적했지만, 1년 후 도르트문트로 향했다.



#2. 제롬 보아텡 (독일, 바이에른 뮌헨)

유럽 축구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팬들은 믿기 어려울 사실 하나, 보아텡은 과거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 선수였다. 둘, 당시 보아텡은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 맨시티 팬들은 보아텡이 경기를 망친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결국 2011년 보아텡은 바이에른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분데스리가의 철벽 수비수로 거듭났다. 

보아텡은 맨시티로 이적하기 전 함부르크에서 꽤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2010년 맨시티로 이적한 뒤 한 시즌 동안 고작 16경기에 출전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첫 시즌이 끝나고 보아텡은 곧장 바이에른으로 이적했다. 겨우 1,350만 유로(약 183억 원)였다. 보아텡은 바이에른에서 리그 우승(2012-13, 2013-14, 2014-15)뿐만 아니라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2012-13)에도 큰 공헌을 했다. 바이에른, 선수 좀 볼 줄 안다.



#3. 지오르지오 키엘리니(이탈리아, 유벤투스)

최근 10여 년 동안 유벤투스는 세리에A의 강자로 군림했다. 키엘리니는 유벤투스의 거침없는 행보의 원동력이다. 2004년, AS로마가 키엘리니를 조금 더 믿어줬더라면 세리에A 판도는 지금과 달랐을 거다. 

2002년 당시 리보르노의 유망주였던 키엘리니의 소유권 50%를 로마가 300만 유로 (약 41억 원)에 사들였다. 그러나 2년 후 그대로 환불받았다. 키엘리니가 복수라도 한 걸까? 그는 피오렌티나와 유벤투스를 거치며 세계적인 선수로 거듭났다.



#4. 폴 포그바(프랑스, 유벤투스)

알렉스 퍼거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서 대단한 업적을 쌓았다. 아, 한 가지 빼고. 포그바에 대한 신임이 부족했다. 2009년 르아브르 AC(리그앙) U-16 팀 주장으로 뛰며 활약했다. 당시 아스널에서 포그바에 관심을 보였지만 그의 발길은 맨유로 향했다. 맨유 유스 아카데미에서 1군 데뷔를 준비했다. 포그바는 맨유 최고의 유망주로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2011-12시즌, 드디어 리그 컵(리즈 유나이티드전)에서 기다리던 첫 경기를 치렀다. 

하지만 그는 2011-12시즌 통틀어 고작 7경기에 그쳤다. 출전 기회가 터무니없이 적어 불만이 쌓였다. 2012년 7월 계약이 만료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최고의 유망주’ 타이틀이 그제야 빛났다. 유벤투스의 세리에A 우승 행진(2012?13, 2013?14, 2014?15)과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2014?15)에 큰 공헌을 했다. 하마터면 ‘실패한’ 유망주가 될 뻔했던 포그바, 그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5. 사무엘 에투(카메룬, 안탈리아스포르)

루이스 피구, 미카엘 라우드럽, 루이스 엔리케 그리고 호나우도는 레알과 바르사 두 팀에서 모두 뛰었다. 양 팀 팬들에게 그들 이름은 금기어다. 자칫하다간 ‘장외 엘클라시코’가 치열하게 펼쳐질 거다. 에투는 예외다. ‘손쉽게’ 바르사 압승이다.

1996년, 에투(당시 16세)는 레알 유소년 아카데미에 입단했다. 적응이 쉽지 않았다. ‘떠돌이’ 신세였다. 4년 동안 레가네스, 에스파뇰, 마요르카에서 임대 생활을 했다. 정작 레알에선 6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결국, 2000년 에투는 레알을 떠났다. 

이후 그는 엄청난 활약을 선보였다. 바르사에서 리그 우승컵을 3번(2004-05, 2005-06, 2008-09), 빅이어를 2번(2005-06, 2008-09)들어 올렸다. 인테르나치오날레 이적 후에도 ‘우승 수집’은 계속됐다. 2009-10 시즌, 스쿠데토와 빅이어를 동시에 들어올렸다. 에투의 이적은 레알 역사에 길이 남을 악수(惡手)다.



#6. 마츠 훔멜스(독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바이에른 유스 시스템은 유럽 내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립 람, 토마스 뮐러, 홀거 바트슈트버 모두 유스 출신이다. 바이에른이 분데스리가를 제패하는 데 크게 공헌한 선수들이다. 훔멜스도 그럴 ‘뻔’ 했단 사실을 아시는지? 1995년, 여섯 살 꼬마 훔멜스는 뮐러와 함께 ‘붉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둘의 행보는 달랐다. 2008년 훔멜스가 도르트문트로 가기 전까지 바이에른에서 고작 2경기를 뛰었다. 이적 후엔 완전히 달라졌다. 현재까지 283경기에 출전했다. 득점도 꾸준히 (24골) 올린다. 독일 대표팀 승선도 문제없다. A매치 44경기에 출전하며 독일 최고의 수비수로 자리 잡았다. 훔멜스의 대활약에 바이에른은 두고두고 땅을 칠 거다. 

#7. 안드레아 피를로 (이탈리아, 뉴욕 시티)

‘밀라노’의 두 주인 인테르와 밀란이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다. 2001년 인테르는 피를로를 밀란으로 이적시켰다. 피를로는 밀란에서 주전 자리를 꿰차고 대단한 활약을 선보였다. 2002년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발탁된 뒤 2006년 월드컵 이탈리아가 우승할 때도 큰 역할을 했다. 

밀란에서 피를로는 리그 우승 2번(2003-04, 2010-11)과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번(2002-03, 2006-07) 그리고 코파 이탈리아 우승(2002-03)을 했다. 이런 선수를 밀란은 유벤투스(2011)로 보냈다. 피를로는 유벤투스에서 무려 리그 우승을 4번(2011-12, 2012-13, 2013-14, 2014-15)이나 더 했다. 그것도 4회 연속. 인테르와 밀란, 닮아도 너무 닮은 거 아닌가요?



#8. 헤라르드 피케(스페인, 바르셀로나)

2008년 피케가 ‘친정’ 바르사로 복귀했다. “다시 돌아오게 돼서 정말 행복하다. 바르사로 복귀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 했다. 맨유 생활은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최정상급 선수들과 함께 뛰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이제 바르사에 뼈를 묻고 싶다.”

그는 바르사 유소년 팀에 입단했지만 2004년 맨유로 향했다. 맨유에서 피케는 네마냐 비디치, 리오 퍼디난드의 대체자였다. 그러나 그는 올드 트래포드(맨유 홈구장)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4년 동안 프리미어리그 선발 출전 횟수가 6번뿐이다. 임대도 한 차례 다녀왔다. 결국, 맨유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바르사로 향했다. 2008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멋지게 데뷔골을 장식하며 귀환을 알렸다. 4년간 쌓였던 한을 풀듯이.



#.9 티에리 앙리 (프랑스, 은퇴)

1998년 월드컵에서 앙리는 프랑스 대표팀으로 출전했다. 그는 팀 내 최다 골을 기록하며 프랑스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소속팀 모나코에서도 엄청난 활약을 선보였다. 앙리를 눈여겨본 유벤투스는 1999년 1월 모나코에 거금 1,050만 파운드(약 184억 원)를 주고 앙리를 데려왔다. 

그러나 앙리는 유벤투스 입단과 동시에 부진의 늪에 빠졌다. 반 시즌 동안 19경기 3골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보였다. 시즌이 끝나고 앙리는 아스널로 이적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앙리는 유럽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거듭났다.  



#10. 라울(스페인, 은퇴)

바이에른이 땅을 치고 후회한다고 했던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화가 나 벽돌이라도 부술 지경이다. 바이에른은 ‘스타’를 내줬다면, 아틀레티코는 ‘전설’을 내줬다. 그것도 지역 라이벌 레알에. 라울은 아틀레티코 유스 선수였다. 운명의 장난이 여기서 시작됐다. 당시 아틀레티코 유스 구단이 재정 문제로 일시적으로 문을 닫게 됐고 라울은 근처 레알 유스로 갔다. 

1994년 라울은 레알 역사상 최연소(17세) 나이에 데뷔전을 치렀다. 2012년 레알을 떠날 때까지 741경기에 출전해서 총 323골을 넣었다. 라울은 리그 6번 우승(1994-95, 1996-97, 2000-01, 2002-03, 2006-07, 2007-08), UEFA 챔피언스리그 3번 우승(1997-98, 1999-00, 2001-02)을 이룩하며 ‘레알’의 전설로 남았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전설로 하자!’) 



에디트=정재은, 글=Greg Lea, 번역=정재영,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포포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