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운 (The Town, 2010)

Doctrine_Dark 2015. 5. 31. 16:24









타운 (2011)

The Town 
7.1
감독
벤 애플렉
출연
벤 애플렉, 존 햄, 레베카 홀, 블레이크 라이블리, 제레미 레너
정보
액션, 범죄 | 미국 | 124 분 | 2011-01-27
글쓴이 평점  
















“찰스타운의 강도들은 아버지에서 아들에게로 대물림 되는 경우가 많다.”

 

 1. 다소 거창해 보이는 저 말로 시작하는 <타운>의 첫 장면은 더그가 이끄는 4인조 강도단의 은행 강탈 장면이다. 걸작 강탈 영화(그 중에서도 주로 프랑스 고전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전문가적인 “노동”(이 표현이 맞는지는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다만)의 행위를 이 영화는 거의 볼 수 없지만, 사전조사, 침입, 강탈, 도주까지, 첫 장면에서 보여주는 이들의 강탈 과정과 행동은 단순하게 꼴리는 때마다 은행을 털겠다고 덤벼대는 단순한 풋내기나 어리바리한 아마추어의 모습이 아니다.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표백제를 뿌리고, 그들이 탔던 밴을 태우는 등... 그들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프로다. 털기 전부터 이미 모든 걸 치밀하게 계산한 그들은 이 방면에서는 전문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영화는 단순하게 터는 걸로는 전문가의 경지에 도달한 4인조 강도단이 은행을 강탈하는 이야기가 아니다.(제발 “미국 최고의 은행 강도단. 도시에 전쟁을 선포한다.” 이런 홍보 문구 좀 안 넣으면 안 되겠니 ㅠㅠ) 물론 초반, 중반, 후반에 한 번 씩 있는 강탈 장면들은 상당히 좋다. 게다가 모든 강탈 장면들을 엄청난 현실성을 기반에 두고 있으며(실제로 미국에서는 이 영화에서의 강탈 장면을 모방한 범죄도 일어났다고 한다.) 후반부에 나오는 총격전은 근래의 강탈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무척이나 빼어난 장면이다. 강탈 장면과 액션 장면이 좋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리얼 범죄 액션’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무리수가 있다.

 

 

2. 이 영화는 더그를 중심으로 한 드라마다. 보스턴에서 살고 있는 그는 부모의 불행하고 안타까운 과거의 사건들 속에서 성장했고 악행을 많이 저질렀던 아버지의 과거에 의해 얽힐 만큼 얽힌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으며, 벗어나려고 하지만 협박으로 대표되어지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아버지와 같이 일했던 꽃장수의 밑에서 원치 않는 삶을 살아간다.

 

 

 

 그는 은행을 털다가 인질로 잡은 부지점장이었던 클레어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녀와 사랑에 빠질 만큼 그는 그 바닥에서 빠져나오고 싶었을 테니까. 그와 그녀는 각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함께 자기까지 한다. 심지어 초반부에 둘이 나누는 대화의 한 장면 중에서 더그가 클레어에게 그녀가 봤다는 문신이 새겨진 남자를 FBI에 신고하라고 하고(그 남자가 자신의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라는 걸 알면서도...) 그 이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상세하게 말해주기까지 한다.

 

 

 한편 그 사랑으로 인해, 그리고 자꾸만 자신이 속해있는 범죄세계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더그로 인해, 그의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인 젬과의 갈등이 깊어진다. 젬은 무척이나 거칠고, 다혈질적이고,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인물이지만, 그와 동시에 친구인 더그를 위해서 뭐든지 희생을 하고 살인도 하고 협박도 일삼는 끈끈한 우정을 지니고 있는 절친한 친구다. 더그가 그 곳에서 빠져나오려고 할 수록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진다. 그리고 그 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클레어와 더그의 어머니의 과거 이야기까지 들먹이는 꽃장수 퍼기의 협박은 더 심해진다.

 

 

3. 더그를 붙잡는 총체적인 것은 ‘보스턴’이라는 도시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능성 높은 하키 선수였지만 아버지로 인해 전문가적인 은행 강도로서 원치 않는 삶을 살고 있는 더그는 이 도시를 벗어나고 싶지만 도시 속에 숨겨진 어두운 범죄의 세계에 발목이 붙잡혀있고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 도시에 있는 그에 연관된 모든 것 - 여자, 감옥에 있는 아버지, 동료 등... - 과 범죄의 세계 그 자체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어야하는 상황에 있으니까 말이다.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보스턴’ 의 모습은 충돌 없이는 단 한 톨의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절망으로 가득 차 있고 빠져나가기 위해서 투쟁하고 싸워야하는 공간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미국에서 나온 빼어난 범죄 드라마 영화들 - 동림 선생님의 <미스틱 리버>, 스콜세즈 감독의 <디파티드>, 그리고 에플랙 감독의 전작인 <곤, 베이비, 곤>과 이번 영화 <타운>까지 - 의 배경을 보면 하나같이 보스턴이다. 다른 리뷰를 보니까 보스턴은 온갖 미국 내에서도 가장 많은 범죄와 악행이 들끓는 무시무시한 범죄의 도시(실제로 미국에서 범죄율 1위의 도시였던 적이 있다고 한다.)이자 미국의 노동자들의 다양한 삶을 모습을 가장 많이 엿 볼 수 있는 도시라고 한다.

 

 <타운>은 위에서 열거한 영화들 중 이런 보스턴의 모습을 그야말로 가장 정확하게 꿰뚫은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시의 이면에 숨겨진 범죄의 온상을 드러내는 영화일 뿐만이 아니라 그 도시 속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마치 그 지역 토박이(벤 에플렉이 보스턴 출신이라고 한다.)가 그 도시에서 사는 사람(주인공)들의 모습을 설명해주듯이 자세하게 보여준다는 거다. 단순히 주인공이 은행을 터는 이야기가 아니라 주인공이 살고 있는 현실 속 생활과 환경을 보여주는데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거다.

 

 

 그러다보니 영화는 장편 소설을 읽는 것 같다. 그만큼 영화의 진행 속도가 느리며, 인물들이 나누는 대사의 양도 많다(시나리오가 정말 좋다는 생각.). 관객들의 눈을 현혹시키려고 하기보다는 그들의 삶의 모습의 단면들을 보여주면 캐릭터와 그들의 심정을 가슴으로 느끼게 하는데 더 많은 공을 들인 영화다(클로즈업이 유독 많은 것도 이 맥락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이렇게 영화는 이야기보다는(이 영화의 이야기도 마이클 만 감독의 걸작 <히트>와 엔딩 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흡사하다. 총격전 장면도 그렇고 후반부에 <히트>의 오마주가 하나 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일러라 생략.) 캐릭터 위주로 진행되며,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과 그 상황을 옭아매는 환경, 그리고 그 환경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그들에 대한 영화다.

 

 

 

 

4. 이 영화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빼먹으면 섭섭한, 이 영화의 일등 공신은 단연컨대 벤 에플렉이다. 이 영화의 연출, 배우, 시나리오까지 담당한 그의 영화 속 존재감은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준 내면 연기는 정말 인상적이지만, 이 영화는 배우 에플렉보다는(물론 배우로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그의 연기 커리어에서 베스트 중 하나로 꼽힐 만하다). 연출자 에플렉으로서의 존재감이 더 크게 느껴지는 영화다. 무척이나 익숙한 요소들로 가득한 영화의 이야기를 무척이나 성실하고 능숙하게 풀어나가는 그의 연출력은 몇 가지 부족하거나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앞으로 그가 연출자로서 어떤 영화를 또 만들어낼지 기대 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적어도 그의 전작 <곤, 베이비, 곤>이 우연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벤 에플렉이 제 2의 이스트우드 감독이 될 것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아직까지 동의할 수 없지만, 앞으로 그가 더 멀리 뻗어나갈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밖에도 조연들의 연기 역시 정말 뛰어났다. 어쩌면 극중에서 벤 에플렉보다 더 존재감 있는 제레미 레너의 연기가 무척이나 강렬했으며(이번에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그 밖에도 FBI 수사관으로 나왔던 존 햄, 더그의 아버지로 딱 한 대목 나왔던 크리스 쿠퍼, 은행 강도 더그와 사랑에 빠진 은행 부지점장으로 나왔던 레베카 홀 모두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 가장 강렬했던 조연은 꽃장수로 나왔던 피터 포스틀스웨이트였다. 몇 장면 등장하지는 않지만 모든 장면에서 느껴지는 그의 존재감은 실로 강렬하다. 정말 별 것도 아니라는 얼굴로 꽃집에서 장미를 다듬으며 중요하고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 모습이 단순히 장미를 다듬는 꽃장수의 이미지를 넘어서서 누구 죽일 기세로 도끼를 갈고 있는 도살자/악독 범죄자의 이미지를 담고 있어서 보면서 계속 섬짓했다. 이 영화가 피터 포스틀스웨이트의 유작이라고 하는데, 알고 보니 유명한 영화에서 많이 출연했던(가장 최근에는 <인셉션>도 있었고...) 배우라고 한다. 그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빈다.

 

 


p.s.

 

1. 조금만 더 나아갔었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영화가 될 수 있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군데군데 생략된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자꾸만 떠오른 마이클 만 감독의 <히트>처럼 170분짜리 영화로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시간 반짜리 확장판이 있다고 하는데 그건 공식적인 루트로는 구하기 힘들 것 같구.... 흠...

 

2. 이 영화의 액션 장면들이 다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젬이 돈 가방을 들고 경찰복을 입은 채로 경찰의 저지선을 뚫으려고 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장면에서의 편집과 카메라워크가 정말 끝내줬다.

 

 

3. 영화의 결말이 너무나도 쉽게 풀리고 영화 전체의 느낌과도 약간 어긋나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작 소설의 결말은 영화의 결말과 왠지 다를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 점 때문에 원작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무엇보다도 영화의 대사가 정말 좋았는데, 이 부분에 역시 원작 소설을 읽어보고 싶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 엄청나게 대단하다는 이야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