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게임=서형욱] 지난 주말, 첼시와 리버풀의 경기 도중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는 장면이 나왔다. 첼시의 공격수 디에고 코스타가 리버풀 수비수 스크르텔과 경합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상대 선수의 몸을 가격한 것이다. 코스타는 스크르텔과 뒤엉켜 쓰러지면서 스크르텔의 몸을 발로 내려 찍었다. (아래 영상) 갑자기 폭행을 당한 스크르텔은 통증을 호소하며 몸을 일으킨 뒤 코스타를 노려봤지만, 이내 현자의 표정을 지으며 아직 쓰러져 있는 코스타에게 손을 내밀었다. 스크르텔이 코스타를 일으켜 세우는 '훈훈한' 장면 덕택인지, 주심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 아무런 카드도 꺼내 들지 않았다.
http://sports.news.naver.com/videoCenter/index.nhn?uCategory=wfootball&category=epl&id=161161 (관련영상)
디에고 '앵그리' 코스타
첼시의 부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공격수 디에고 코스타의 계속된 말썽(?)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코스타가 경기 중 거친 행동을 일삼은 것은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다. 코스타는, 이날 맞붙은(?) 스크르텔과도 이미 구원이 있다. 지난 1월 리그컵 4강전에서 코스타는 스크르텔의 발등과 엠레 찬의 발목을 고의적으로 짓밟아 FA로부터 3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지난 9월에는 아스널전에서 상대팀 수비수 가브리엘을 자극시키는 행위로 상대 선수가 퇴장당하게 만들어 또다시 입길에 올랐다. (이 경기가 끝난 뒤 팀 동료인 수비수 커트 주마가 - 나중에 사과했지만 - 그를 "사기꾼(cheat)"이라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쨌거나, 국내 팬들에게서마저 '깡패', '디에고 갱스터' 등의 별칭을 얻을만큼 난폭한 매너는 이제 코스타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자리잡았다.
코스타가 이런 류의 악명(?)을 얻은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10시즌 동안 코스타가 골보다 경고/퇴장 카드를 더 많이 받은 시즌이 무려 7시즌에 달한다. 다들 알겠지만, 코스타는 수비수가 아닌 공격수다. 프로 선수 이전에도 비슷했던 것 같다. 코스타는 어린 시절부터 경기 도중 상대 선수들을 가격해 문제를 일으켰다고 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뛰던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처럼 스타로 자리 잡기 이전부터 거칠고 과격한 행동으로 여러 차례 지탄의 대상이 됐다. 라요 바예카노 임대 시절은 물론이고, 이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돌아와 팔카오와 함께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할 무렵에도 갑작스런 화풀이에 거친 행동으로 종종 문제를 일으켰다. 첼시 이적 이후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러한 '튀는' 행동의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코스타는 자신이 출전하는 대부분의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싸움을 벌이거나 상대를 거칠게 몰아붙인다. 현지 언론들은 코스타의 이러한 행동은 카메라 밖에서도 자주 목격된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수비수와 다투고 또 상대를 자극한다.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상대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선수인 셈이다. EPL 진출 이후에는 어느 정도 영리하게(?) 반응하며 리그에서의 퇴장은 피하고 있지만 상대를 자극하거나 상대의 도발에 격렬히 반응하는 등 위태로운 장면은 여전하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언제부턴가 상대팀 수비수들은 코스타의 거친 태도와 위험한 플레이에 '무대응'하거나, 반대로 그의 이런 성정을 이용해 화를 돋우는 등 나름의 방식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아스널의 가브리엘은 그에게 '맞서다' 화를 당한 케이스지만, 지난 주말 스크르텔의 경우처럼 많은 선수들은 코스타가 어떤 행동을 하든 '쿨~'하게 받아 넘기곤 한다. 문제는, 이러한 대응이 코스타 스스로를 파괴하는 쪽으로 심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에 있다. 본인 스스로의 증언이나 주위 동료들과의 관계를 보면, 경기장 밖에서의 코스타는 이렇게 호전적이고 파괴적인 행위를 일삼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경기장 밖에서의 행동과 무관하게, 경기 도중 이처럼 거친 행위가 계속된다면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첼시 팬들은 디에고 코스타를 사랑한다. 테리도, 무리뉴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디에고 코스타의 이러한 태도에 '안티'만 따라붙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전현직 축구스타들은 코스타의 이러한 승부욕, 투쟁심, 적극성이 그의 기술적인 장점과 만나 공격수로서 지금 레벨에 도달하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라 분석한다. 가끔 과할 때도 있지만, 상대 수비의 과도한 견제를 받는 정상급 공격수에게는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는 주장이다. 팬들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나 전통적으로 선수들간의 몸 접촉이 많고 거칠기로 이름난 잉글랜드 축구팬들은 예쁘게 공을 차는 선수들보다 코스타처럼 앞장 서서 상대를 부수고 또 거칠게 몰아세우는 선수에게 매료되는 경향이 있다. 맨유의 전설인 에릭 칸토나를 필두로, 90년대 잉글랜드 대표팀의 미드필더였던 폴 개스코인, 2000년대 잉글랜드 축구의 아이콘인 웨인 루니 등은 이러한 계열에 속하면서 큰 인기를 얻은 대표적 인물들이다. (저 악랄하던 악동 시절의 조이 바튼조차, 적잖은 지지자들을 몰고 다녔다.) 당연히, 특히 첼시 팬들 사이에서 디에구 코스타의 인기는 대단하다. 지난 9월, 첼시의 UEFA 챔피언스리그 마카비 텔아비브전을 보러 스탬포드 브릿지에 갔을 때, 골을 제외하면 가장 큰 환호가 터져나온 때는 벤치에 앉아있던 디에고 코스타가 몸을 풀던, 또 교체투입되던 순간이었다. 거액의 공격수를 영입하고서도 번번이 실망만 안았던 첼시 팬들은 입단하자마자 골을 몰아넣고 상대 수비라인을 부수고 다니는 그에게 환호와 신뢰를 보냈다. 이후 몇 차례 말썽이 빚어진 뒤에도 코스타를 향한 기대를 접지 않고 있다.
분노 조절 장애? - 루니와 수아레즈의 경우
이러한 양면적 특성은, 디에고 코스타가 자신의 문제를 인지하면서도 이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별로 없는 이유로 귀결된다. 디에고 코스타는 자신의 거친 플레이가 계속 논란을 불러 일으키자 "이게 내가 축구를 하는 방식이다. 바뀌지 않을 것"이라 못을 박으며 자신있게 스스로를 변호했다. 경기장 밖에서는 그러지 않는다며 선을 긋기도 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자신이 지금 단계에 올라오는 동안 보여줬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에 관해 굉장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친형인 자이르 코스타의 증언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자이르 코스타는 "디에고는 어릴 때부터 지는 걸 정말 싫어하는 아이였다. 자기가 속한 팀이 지거나 본인이 납득할 수 없는 반칙이 선언되면 상대를 잡아 먹을 듯이 달려들곤 했다. 이건 디에고가 다른 선수들보다 더 나은 선수가 되려는 열정이 너무 강해서 그런거다. 그래서 경기를 뛸 때면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싸움으로 끝날 때가 많았다"며 이러한 천성이 코스타에게 필수불가결한 것이라는 투로 말하기도 했다.
코스타 형제의 말이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 이러한 승부욕, 적극성, 그리고 적당한 공격성은 선수 본인 뿐만 아니라 함께 뛰는 동료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제되지 않는 분노는 모두에게 마이너스 요소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로버트 호건 존스홉킨스대학 교수는 이러한 성향의 인물들은 단기적으로 분명히 팀 성과를 향상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면서도, 장기적으로 볼 때 조직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분석한다. 예를 들어 퍼거슨 감독이 종종 펼친다는 '헤어드라이어 혼구녕'은, 간헐적일 때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매번 이어진다면 효과는 떨어지고 서로간의 신뢰도 흩어진다. 즉, 과도한 분노는 조직원들에게 피로감을 주고 팀웍을 해친다는 것이다. 특히, 이른바 '분노 조절 장애' 수준에 달하는 인물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정식 명칭은 '간헐적 폭발성 장애'라고 한다.[하단 박스])
"이러한 기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디에고 코스타의 행동들은 모두 분노 조절 장애에서 비롯된 것이다. 화를 내야 할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는 사람도 분명 감정 조절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대개의 사람들이 별다른 감정 표현 없이 넘어갈 상황에서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그러한 반응이 이른바 스포츠맨십에 반하는 것으로 이어질 경우 커다란 문제에 봉착한다. 코스타가 이미 받았던 징계나 상대팀 선수들과의 지속적인 충돌은 그러한 문제의 일부다.
축구계에서 이처럼 '분노 조절 장애'로 의심받은 스타들은 적지 않다. 극도의 긴장과 책임감이 동시에 찾아오는 일상을 사는 것이 선수들에게는 견디기 쉽지 않다. 육체의 한계를 경험하는 한편, 정신의 피로도 또한 극대화되는 상황에서, 그 스트레스를 분노 표출로 푸는 것은 본인을 포함한 모두에게 득이 될 것이 없다. 하지만 때로는 이것이 관리가 안되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으로는 젊은 날의 웨인 루니와 얼마 전까지의 루이스 수아레즈가 있다. 이들은 팀의 배려로 정기적으로 '분노 매니지먼트(anger management)'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소싯적에 경기장에서 수시로 분노를 표출하고 주심에게 대들다 퇴장을 당하기도 했던 웨인 루니는, 20대 후반부터 유별나지 않은 선수로 정착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분노 조절에 실패하는 바람에 상대 선수를 종종 깨물어대던 루이스 수아레즈도 심리 치료를 받으면서 증상이 완화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디에고 코스타 역시 이러한 관리를 받을 필요가 있다. 최소한 상담이라도 받기를 권하고 싶다. 분노 조절 장애는 본인뿐만 아니라 소속팀을 비롯한 자신의 우군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끼친다. 더욱이 요즘처럼 소속팀의 상황이 좋지 않은 때라면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될 수 있다. 경기장 밖에서는 천진난만하고 동료들과 우애도 좋다고 말하지만, 선수는 결국 경기장 위에서의 모습으로 말하는 것이다. 거의 매 경기 상대 수비수와 충돌하는, 위험한 플레이를 반복하는 코스타의 모습은 굳이 징계가 아니더라도 팀 전체 분위기를 언제든 망가뜨릴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소다. 귀화해 뛰는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의 부진을 두고 스페인 팬들이 애국심을 문제 삼는 것에 발끈하는 모습에서 보듯, 코스타의 '분노'는 최소한 그 방향과 빈도를 조절하는 요령이 필요해 보인다. 모두가 지나치다고 얘기하는 것에 귀기울이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가 가진 뛰어난 재능과 폭발적인 득점력은, 생각보다 빠르게 타올라 재로 변할 수 있다.
오는 새벽, 첼시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앞두고 있다. 매 경기, 코스타의 골을 기대하는 팬들의 마음 한켠에, 오늘 또 이 녀석이 사고는 치지 않을지 걱정하는 마음이 따라붙는 것이 정상적이라 할 수는 없다. 누군가 그를 심리 상담을 위한 의자에 앉혀야 한다. 그것이 코스타는 물론이고 첼시, 그리고 스페인 대표팀 모두를 위한 선택이 될 것이다.
[BOX | 참고] 간헐적 폭발성 장애 (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 / IED) aka 분노조절장애
- 진단 기준 : 재산이나 신체에 해를 입히지 않는 육체적, 언어적 폭력이 최근 3개월 동안 1주일에 두 차례 이상 발생. 또는 재산이나 신체에 해를 입히는 감정폭발이 1년 이내에 세 차례 이상 발생. 공격성과 감정 폭발의 정도가 이의 계기가 되는 자극이나 스트레스의 정도에 비례하지 않는 경우. 공격성과 감정 폭발이 무계획적으로 목적없이 일어날 때. 공격성과 감정 폭발로 경제적, 법적 문제를 겪는 경우. 환자의 나이가 최소 만 6세여야 한다.
- 특징 : 환자 본인이 해당 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치료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 치료 : 흔히 '앵거 매니지먼트'라 통칭되는 것으로, 심리치료와 약물치료, 신경치료 등이 병행된다. (출처 : 정신질환판단기준 DSM-5 20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