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29년 전 오늘 퍼거슨 신화가 시작되다

Doctrine_Dark 2015. 11. 6. 21:27

1. 1986년 11월 6일, 잉글랜드 축구의 판도를 바꿀 남자의 등장 


[이성모의 더스토리] 1986년, 잉글랜드. 


그 해는 100년을 훌쩍 넘는 잉글랜드 축구 역사에서도 가장 머지사이드의 두 팀이 막강했던 해다. 빌 샹클리, 밥 페이즐리, 조 페이건에서 케니 달글리시로 이어지는 리버풀의 황금세대는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완벽하게 독주하고 있었고, 1980년대에 들어 그런 그들을 가장 강력하게 막아서고 나선 세력은 에버튼 선수 출신이자 구단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불리는 하워드 켄달이 이끈 에버튼이었다. 


달글리시의 리버풀과 켄달의에버튼은 1985/86시즌 리그에서 승점 1점 차이로 1, 2위를 차지했고 FA컵에서도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머지사이드의 두 팀이 FA컵 결승에서 만난 것은 그 해가 처음. 두 대회의 우승 트로피는 모두 리버풀에 돌아갔으나, 에버튼은 바로 이어진 시즌에서 리버풀을 따돌리고 다시 한 번 리그 정상에 오른다. 그 시즌 역시 리그 2위는 리버풀의 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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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 1. 퍼거슨 감독 부임 직전까지의 잉글랜드 1부 리그 우승 횟수. 리버풀의 두 팀이 최다우승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그렇게 리버풀이 잉글랜드 축구의 패권을 강력하게 쥐고 있던 1986년, 리버풀 시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맨체스터의 강자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무려 20년 동안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리그 우승 트로피를 안겨줬던 것은 맨유를 명문으로 만든 맷 버즈비 감독. 맨유에 리그 우승과 유러피언컵 우승 트로피는 물론 뮌헨 참사라는 거대한 재앙을 극복하고서도 정상까지 오르는 극적인 여정을 통해 팀 고유의 철학을 심어준 버즈비가 떠난 이후 맨유는 간간이 컵 대회 우승을 차지했을 뿐, 정작 가장 중요한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맷 버즈비는 맨유를 의심의 여지 없는 명문 구단으로 만들었으나 버즈비가 올려놓은 것은 맨유의 명성만이 아니라 곧 그 구단에 대한 기대치도 마찬가지였다. 보비 찰튼의 선제골과 조지 베스트의 결승골로 맨유가 잉글랜드 클럽 최초의 유러피언컵 우승팀이 됐던 그 순간부터, 더이상 그들은 국내 컵대회 우승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팀이 아니었다. 1980년대 초 맨유를 지휘한 론 애킨슨 감독은 단 한 차례도 리그 4위 이하의 성적을 거둔 적 없이 팀에 2회의 FA컵 우승을 안겼으나, 그것도 맨유의 성에는 차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맨유를 다시 맷 버즈비 시대의 영광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남자를 찾아나섰다. 그리고 그 남자를 데려오기 위해 마틴 에드워즈 당시 맨유 회장이 비밀리에 직접 스코틀랜드까지 찾아가는 정성 끝에 데려온 남자는 마침내 맨유 관계자들의 길었던 20년의 기다림을 끝내고 차츰 잉글랜드 축구의 중심을 리버풀에서 맨체스터로 옮겨오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리버풀이 가장 막강했던 바로 그 해인 1986년의 11월 6일, 잉글랜드 축구의 판도를 영원히 바꿔놓을 한 남자가 맨체스터에 입성했다. 


그 남자의 이름, 알렉스 퍼거슨이다.


2. 1986~1990년 유소년 팀 강화와 긱스 영입, 그리고 경질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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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애버딘 감독 시절의 퍼거슨 감독)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맨유에 오기 전 이미 인정받은 '위너(Winner)'였다. 그는 자신이 감독이 됐을 당시 스코틀랜드 2부 리그에 있던 에버딘을 1부로 승격시킨 후, 팀에 세 번의 리그 우승, 네 번의 FA컵 우승, 한 번의 리그컵 우승을 안겨줬다. 그런 그가 1982/83시즌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차지했던 순간부터 이미 그에게 스코틀랜드 무대는 너무 작았다. 


그런 그에게 처음 감독직을 제안했던 잉글랜드 클럽은 맨유가 아닌 아스널이었다. 그러나, 양측의 협상은 퍼거슨 감독을 마냥 기다릴 수 없었던 아스널 측이 조지 그레엄을 감독에 임명하면서 결렬됐고 그 후에 맨유의 제안을 받은 퍼거슨 감독은 곧바로 맨유의 감독직을 맡기로 했다. 그의 스승이자 셀틱을 이끌고 트레블을 달성했던 조크 스틴 감독의 말 덕분이었다. 


"언젠가 조크 스틴 감독이 내게 맨유 감독직을 거절한 것을 평생 후회했다고 말 한 적이 있다. 맨유에게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이미 감독으로서 승승장구 하고 있었던 퍼거슨 감독은 맨유가 그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그가 맨유에 무엇을 안겨줘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맨유 감독에 부임한 직후 그것을 팬들에게 안겨주겠노라고 선포했다. 그는 자신이 감독에 부임한 후 처음 가졌던 경기의 매치데이 프로그램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맨유의 과거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맨유가 지금까지 쌓아온 위대한 업적을 과소평가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할 것은 오직 하나, 전진하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가 맨유 감독에 부임한 직후 가장 먼저 했던, 그리고 가장 잘한 두 가지 일은 팀의 규율과 기강을 바로 잡는 것 그리고 맨유 유소년 팀을 강화하는 일이었다.


퍼거슨 감독의 부임 당시 맨유 선수단에는 자유롭게 음주를 즐기는 문화가 만연해있었다. 퍼거슨 감독은 부임 직후에 훈련장에서 선수단을 모아놓고 말했다. 


"너희가 바꿔라. 나는 절대로 내 방식을 바꾸지 않을테니까."


그의 그런 자세는 그가 1986년부터 27년 후인 2013년까지 맨유라는 하나의 제국을 자신의 계획대로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자신이 맨유 감독이 됐던 바로 그 순간부터 선수들에게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린 것이다. 경기장에 나가서 뛰고 스타가 되는 것은 선수들일지라도, 그 안에서 맨유를 움직이는 것은 감독이라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퍼거슨 감독은 꼭 맷 버즈비 감독이 '버즈비의 아이들'을 이끌고 평균 연령 22세의 1군 팀으로 리그 우승을 달성했듯, 맨유 유소년팀을 거쳐 맨유의 철학을 가슴에 품고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이 팀을 성공으로 이끌 것이라고 믿었다. 그의 그런 믿음은 아주 정확했고, 성공적이었다. 


"맨체스터 지역의 뛰어난 유소년들이 모두 맨시티에 입단하는 것을 봤다. 그럴 수는 없다. 이 상황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그의 맨유 유소년팀 강화에 대한 의지와 열정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라이언 긱스의 영입이었다. 퍼거슨 감독은 맨유 감독에 부임한 바로 다음해였던 1987년, 14번째 생일을 맞이한 라이언 긱스의 집에 직접 찾아가는 정성을 보인 끝에 긱스를 맨유 유소년팀으로 데려왔다. 그 일이 아니었다면 긱스는 곧 맨시티 선수가 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맨유 선수가 된 긱스는 맨유를 거쳐간 모든 선수들 중 압도적인 기록으로 최다출전자(963경기)가 되며 퍼거슨 감독의 은퇴를 피치 위에서 지켜봤다. 


"나는 그것이 퍼거슨 감독의 가장 뛰어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직접 내 집까지 찾아와서 마치 나와 내 가족이 그를 몇년동안 알았던 것처럼 우리를 편안하게 만들어줬다."(라이언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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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맨유 입단 초기의 라이언 긱스. 퍼거슨 감독의 설득으로 맨유에 입단했다.) 


한편, 퍼거슨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맨유 1군 선수단은 전임자인 론 애킨슨 감독 시절보다 오히려 더 좋지 않은 성적을 내고 있었다. 퍼거슨 감독이 직접 시즌 첫 경기부터 팀을 지휘한 1987/88시즌 리그 2위에 오르며(우승팀은 리버풀) 가능성을 보이는 듯 했던 퍼거슨의 맨유는 이어진 두 시즌에서 11위, 13위를 기록했다. 애킨슨 감독 시절 한 차례도 4위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는 맨유로서는 당혹스러운 성적표였다. 


퍼거슨 감독의 경질설이 잉글랜드 미디어를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대로 실패로 귀결되는 것 같던 맨유와 퍼거슨의 만남은, 맨유의 1989/90 시즌 FA컵 우승으로 인해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아주 묘하게도, 그 FA컵에서 맨유가 패해서 탈락할 것 같았던 두 경기에서(그랬다면 퍼거슨 감독의 경질이 유력했던) 골을 터뜨렸던 두 선수는, 맨유 유소년 팀 출신의 리 마틴과 마크 로빈스였다. 영국 언론에서는 아직도 그 두 선수의 골을 '퍼거슨을 살린 골'이라고 부른다. 


3. 1990~1996년 '킹' 칸토나와 퍼거슨의 아이들 


1989/90시즌의 FA컵 우승으로 터닝포인트를 맞은 퍼거슨 감독의 맨유는 이어진 1990/91시즌 UEFA 컵 위너스 컵 결승전에서 맨유와 바르셀로나 두 팀에서 모두 뛴 경력이 있는 공격수 마크 휴즈(현 스토크 시티 감독)의 두 골에 힘입어 요한 크루이프가 이끄는 FC 바르셀로나를 꺾고 버즈비 감독의 유러피언컵 우승으로부터 23년 만에 유럽 대회 우승을 차지한다. 


축구계가 퍼거슨 감독을 '역대 최고의 감독'이라고 기억하는 것은 그가 축구팀의 감독에게 요구되는 여러가지 중 하나만을 잘 했기 때문이 아니라 거의 모든 측면에서 최고였기 때문이다. 


그는 쇠락해가던 맨유 유소년팀을 다시 한 번 천재들의 양성소로 바꿔놓은 동시에 마크 휴즈, 스티브 브루스(현 헐 시티 감독), 피터 슈마이켈, 데니스 어윈 등 최고 수준의 성인 선수들을 영입하는 데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그들 중 일부는 이미 능력을 인정 받은 스타선수였고 일부는 잉글랜드에 거의 알려진 바 없는 선수였다. 그런 선수들의 조합속에 퍼거슨 감독은 맨유 감독 부임 5년 만에 팀을 리그는 물론 유럽 대회에서 정상에 도전하는 팀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렇게 맞이한 1992년, 퍼거슨 감독이 6년간 만들어온 1군 팀과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던 유소년 선수들 위에 화룡점정이 될 한 명의 스타가 맨유 유니폼을 입는다. 맨유의 '킹' 에릭 칸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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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EPL 초기 최고의 '스승과 제자'였던 퍼거슨 감독과 에릭 칸토나.) 


맨유에 오기 전에도 프랑스 무대에서 이미 많은 사건에 연루됐고, 리즈에서 뛴 짧은 기간에도 이미 팀내 선수들과 불화를 낳고 있던 에릭 칸토나는 분명 천재적인 선수였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퍼거슨 감독은 그 폭탄을 안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스리며 칸토나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현시킨다. 


결국 칸토나의 합류로 자신이 구상했던 맨유의 마지막 퍼즐을 맞춘 퍼거슨 감독은 EPL 출범 첫 해였던 1992/93시즌 자신이 맨유 감독에 부임하며 팬들에게 다짐했던 그 약속을 현실로 이뤄낸다. 맨유의 26시즌 만의 리그 우승이었다. 


첫 리그 우승을 거둔 그 순간부터 퍼거슨의 맨유는 막을 자가 없었다. 1992/93시즌 리그 우승을 거둔 맨유는 바로 다음 시즌에는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의 '더블'을 달성했다. 


유니폼 깃을 세우고 그라운드를 종횡무진하는 에릭 칸토나라는 슈퍼스타가 이끌고 슈마이켈, 브루스, 폴 인스와 로이 킨,브라이언 롭슨(1994년에 맨유를 떠난 맨유 최장수 주장), 마크 휴즈로 이어지는 흠잡을 데 없는 골키퍼, 수비, 미드필더, 공격 라인. 거기에 긱스를 필두로 계속해서 유소년팀에서 배출되는 베컴, 스콜스, 네빌 형제, 니키 버트 등 새로운 스타들의 조합속에 그들은 첫 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시즌으로부터 5시즌 중 4시즌에서 리그 우승을 차지한다. 그 중 그들이 유일하게 우승을 놓쳤던 시즌은, 칸토나가 '쿵푸킥'으로 8개월 출장정지를 당했던 바로 그 시즌이었다.(우승팀=블랙번 로버스) 


그렇게 마치 리버풀이 1970년대와 1980년대를 독주했던 것을 맨유가 1990년대에 재현하는 것 같았던 1996년, 맨유의 독주를 막을 퍼거슨의 첫 '맞수'가 EPL에 등장한다. 그러나 일본에서 건너와서 EPL에 혁명을 불러오는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은, 오히려 퍼거슨의 맨유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4. 1998~2001년 '맞수' 벵거의 등장과 트레블, 3년 연속 리그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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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EPL의 양강체제를 이뤘던 퍼거슨 감독과 벵거 감독) 

 

'라이벌은 서로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말은 교과서에만 나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축구팬들에게 아주 익숙한 EPL의 두 감독 사이의 경쟁에서 고스란히 재현됐던 일이다. 퍼거슨의 맨유는 아스널에 더블을 내줬던(1997/98시즌) 바로 다음 시즌 트레블을 달성했고, 벵거의 아스널은 맨유에 리그 우승 타이틀을 뺏겼던(2002/03시즌) 바로 다음 시즌 무패우승을 달성했다. 


아르센 벵거 감독이 아스널에 부임했던 것은 1996년 9월 30일의 일, 그가 아스널을 이끌고 더블을 달성했던 것은 1997/98시즌의 일이다. 그 시기에 맨유는 퍼거슨 감독이 이끈 맨유의 전성기 중 1기에 해당하는 팀이 이제 막 해체될 시기를 거치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맨유의 공격의 핵심이었던 에릭 칸토나가 은퇴를 선언했고 브라이언 롭슨, 마크 휴즈, 스티브 브루스 등 1990년대 초기의 스타들도 이미 팀을 떠난 후였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감독에게 필수적인 역량인 동시에 퍼거슨 감독의 최대장기인 놀라운 리빌딩 능력이 빛을 발했다. 에릭 칸토나와 마크 휴즈 브라이언 맥클레어의 공격진은 앤디 콜, 드와이트 요크, 테디 셰링엄, 솔샤르가 대체했고 스티브 브루스가 떠난 수비에는 야프 스탐이 들어왔다. 좀 더 이른 시기에 팀을 떠난 브라이언 롭슨을 대체했던 로이 킨은 이미 팀의 중심선수였고, 긱스, 베컴, 스콜스, 네빌 형제, 니키 버트로 대표되는 '퍼거슨의 아이들'은 이제 어느덧 1군 팀에서 최고의 기량을 뽐내고 있었다.  


벵거 감독의 아스널에 더블을 내주는 사이 세대교체를 단단히 하며 더 강해진 맨유는 바로 그 다음 시즌 같은 아스널과 리그에서, FA컵에서 혈투를 벌인 끝에 2개 대회 우승 트로피를 모두 차지하고 바이에른 뮌헨과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맞붙는다. 


뮌헨이 선제골을 넣으며 우세하게 풀어나간 경기, 퍼거슨 감독은 두 장의 교체카드를 사용했고 그 두 명의 선수 셰링엄과 솔샤르는 나란히 골을 터뜨리며 퍼거슨 감독과 맨유 역사의 정점을 완성한다. 그 순간에 정확히 필요한 두 선수를 투입한 퍼거슨의 용병술이 더 주목 받았으나, 애초에 그 두 선수는 퍼거슨의 혜안이 아니었다면 맨유에 입단하지 않았을 선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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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맨유의 1998/1999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선발 출전팀) 


많은 축구관계자와 팬들이 1998/99시즌 트레블을 퍼거슨 감독 최고의 업적으로 꼽지만, 그의 또다른 진가는 바로 그 직후에 나왔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는 '정점'에 오른 후에도 계속 잘했다.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한 직후에 동기부여를 잃고 리그 11위로 곤두박질 쳤던 맷 버즈비 감독의 전례와는 달리 그는 1998/99시즌 트레블 직후 유럽 유수의 클럽들의 러브콜을 받은 주장 로이 킨을 결국 잔류시키는 등 팀의 중심을 잡는 데 성공하며 두 시즌 연속해서 더 리그 우승을 차지,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최초로 한 팀을 이끌고 3년 연속 리그 우승을 기록한 감독이 된다. 


5. 2001년, 은퇴 발표와 아내 캐시 그리고 은퇴 번복


그렇게 트레블과 3시즌 연속 리그 우승이라는 위업을 연달아 달성한 퍼거슨 감독은 2001/02시즌을 앞두고 그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발표하며 많은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그 해 그의 나이 꼭 60세, 그는 이미 축구 감독으로서 이룰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누린 후였다. 그 자리에서 그대로 은퇴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바꾼 사람은 축구계 인물이 아닌 그의 아내 캐시 퍼거슨이었다. 그녀는 축구에 대해서는 잘 몰랐으나 자신의 남편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남편이 축구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아는 그녀는 2001년 크리스마스에 소파에 앉아 졸고 있는 퍼거슨 감독의 발을 걷어차며 '명령'을 하고 나섰다. 


"당신은 은퇴 못 해요. 하나, 당신은 충분히 건강해요. 둘, 나는 당신이 하루종일 집에 있도록 내버려둘 수 없어요. 셋, 당신은 아직 너무 젊어요."


아내뿐 아니라 아들들도 은퇴하지 말라며 간청하고 나서자 퍼거슨 감독은 대답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이미 다른 감독과 합의를 했을 수도 있어."


그러나 이미 '헤어드라이어'로 유명했던 퍼거슨의 발을 걷어찰 정도로 당찬 여성인 캐시는 거기서 물러서지 않았다. 


"당신이 맨유에서 한 일을 생각해봐요. 당신이 마음을 바꾸고 다시 팀을 이끌 수 있도록 맨유가 당신에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결국 그 아내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던 퍼거슨 감독은 바로 그 다음날 맨유 이사진에 전화를 걸어 은퇴 의사를 번복하고 싶다고 말했고 맨유 이사들은 그의 의사를 곧바로 받아들였다. 맨유가 퍼거슨 감독의 후계자로 내정했던 스벤 에릭손 감독과 정식미팅을 갖기 직전의 일이었다.


퍼거슨 감독은 그렇게 2001/2002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던 마음을 바꾸고 다시 한 번 새로운 맨유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는 당시 자신의 심정을 자서전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은퇴를 발표했던 순간, 나는 계획하는 일을 멈췄었다. 그리고 은퇴를 번복하면서 나는 다시 꿈꾸기 시작했다. 맨유에는 새로운 팀이 필요했다." 


현대의 축구팬들, 특히 맨유팬들이 목격한 수많은 맨유의 스타 선수들은 대부분이 퍼거슨 감독의 아내 캐시에게 빚을 진 셈이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퍼거슨 감독의 전화를 받고 박지성이 은사인 히딩크 감독을 떠나 맨유에 입단하는 일도, 그에 이어서 한국의 축구팬들이 EPL을 '우리의 리그'처럼 즐기게 되는 일도, 호날두와 루니가 퍼거슨 감독의 부름을 받고 맨유에서 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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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퍼거슨 부부. 퍼거슨 감독은 아내 캐시의 설득으로 은퇴를 번복했고 훗날 아내를 위해 은퇴를 결심했다.) 


6. 2001~2004년 새로운 맨유의 건설과 첼시 감독직 거절


퍼거슨 감독이 은퇴를 발표했다가 번복했던 2001/02시즌부터 맨유는 현대 팬들에게 더 익숙한 인물들을 속속 영입하고 나선다. 그 중에는 반 니스텔루이, 리오 퍼디난드와 같은 성공적인 영입도 있었고 베론과 포를란처럼 실패한 영입도, 그리고 호날두와 루니처럼 현재도 활약하고 있는 슈퍼스타들도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즉 2001~2005년의 EPL은 벵거 감독의 아스널이 절정의 기량을 뽐내고 있었던 시기이자, 맨유와 아스널의 양강체제로 양분됐던 EPL에 완전히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며 또 한 번 판도를 뒤바꿔놓은 시기였다. 2003년 잉글랜드 축구계가 목격한 적 없는 천문학적인 부를 가진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인수한 첼시의 등장이 그것이다. 


2003/04시즌 라니에리 감독(현 레스터 시티 감독) 체제하에 자신의 인수이래 첫 시즌을 시작한 로만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는 곧 라니에리 감독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감독에게 첼시 감독직을 제안하고 나섰다. 그리고 그 첫 타겟이 됐던 것이 다름 아닌 맨유의 수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었다. 


그가 퍼거슨 감독에게 감독직을 제안했다는 사실은,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첼시를 인수했던 배경을 살펴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그가 잉글랜드 축구에 매료됐던 경기가 다름 아닌 2002/03시즌 맨유 대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였으며, 그는 첼시를 인수했던 순간부터 첼시가 리그 우승이 아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리길 원했다. 퍼거슨 감독은 그 맨유를 이끌었던 감독이자 이미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이미 들어올린 남자였다. 


그러나 첼시 감독직 제안을 받은 퍼거슨 감독은 "맨유를 떠날 이유가 전혀 없다"는 말로 단칼에 그 제안을 거절하고 맨유에 남는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첼시는 결국 라니에리 감독을 경질하고 새로운 감독을 영입한다.


FC 포르투를 이끌고 유로파리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 감독은 취임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스페셜원'이라고 부르며 단숨에 콧대높은 영국 기자들을 제압한다. 그리고 그 남자는 곧바로 퍼거슨과 벵거 두 남자가 나눠갖던 리그 트로피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7. 2005~2008년 '빅4'의 시대와 또 한 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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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빅4'시대 초기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맨유와 첼시)


무리뉴 감독이 첼시 감독이 됐던 2004년, 리버풀 역시 베니테즈 감독을 임명하며 오랜 침묵을 깨고 우승경쟁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벵거 감독의 아스널은 무패우승을 전후로 새 홈구장 건축에 따른 재정난이 본격화되며 그 이전의 막강함을 잃었으나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렇게, 퍼거슨 대 벵거의 양강체제가 끝나고 퍼거슨의 맨유, 벵거의 아스널, 무리뉴의 첼시, 베니테즈의 리버풀로 이어지는 '빅4'의 시대가 열렸다. 


빅4의 시대를 선점했던 것은 무리뉴 감독의 첼시.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지원하는 천문학적인 이적료에 이미 FC 포르투를 이끌고 유로파리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무리뉴 감독의 전술이 더해진 첼시는 한 시즌 전 무패우승을 달성했던 아스널보다도 더 높은 승점(95점 : EPL 역대 최다 승점)을 기록하며 빠르게 EPL 정상에 등극한다. 


퍼거슨 감독이 처음 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1992/93시즌 이후로, 2년 연속 리그 우승을 놓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벵거 감독의 아스널과는 또 전혀 다른 스타일로 EPL 정상에 오른 첼시를 제압하기 위해 퍼거슨 감독은 팀을 더 강화시키고 나섰다. 


그리고 바로 그 2005/06시즌에 맨유에 입단하는 것이 박지성과 반 데 사르, 에브라와 네마냐 비디치였다. 


그렇게 시작한 2005/06시즌, 퍼거슨 감독은 자신과는 물론 팀 동료들과 계속해서 마찰을 일으키고 있던 로이 킨을 내보내는 결단을 내리고 팀 조직력을 강화시킨다. 팀의 중심이었던 로이 킨을 내친 퍼거슨 감독의 선택은 당시에는 파격적인 것으로 보였으나 시간이 가면서 그의 선택은 결국 팀을 위한 현명한 판단으로 판명난다. 


2003/04시즌 아스널의 무패우승에 이어 무리뉴 감독이 우승을 차지한 2004/05, 2005/06시즌까지 총 3시즌을 리그 우승 없이 보낸 퍼거슨 감독의 맨유는 2006/07시즌 마침내 다시 한 번 퍼거슨 감독의 리빌딩이 빛을 발하며 첼시로부터 우승 트로피를 가져오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맨유의 '슈퍼스타'였던 베컴의 대체자로 맨유에 입단했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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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맨유의 리빌딩에 정점을 찍었던 호날두와 퍼거슨 감독. 호날두는 퍼거슨 감독으로 인해 맨유에 입단했고 맨유에서 최고의 선수가 됐다.)


맨유 입단 초기 '개인기는 뛰어나지만, 이기적인 선수'로 치부되는 '미완의 대기'였던 호날두는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나온 루니와의 충돌장면 이후 잉글랜드 팬들의 엄청난 야유 속에 경기를 치렀지만, 팬들이 야유를 할수록 오히려 더 강해지는 모습을 보이며 결국 자신의 실력으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런 호날두가 아스널, 리버풀, 레알 마드리드가 아닌 맨유에 입단했던 배경, 그가 독일 월드컵 이후 잉글랜드를 떠나지 않고 맨유에 남은 배경에는 모두 퍼거슨 감독이 있었다. 아스널 입단을 앞두고 있던 호날두를 재빠르게 맨유로 데려온 사람도, 2006년 독일 월드컵을 끝으로 잉글랜드를 떠나고자 했던 호날두를 설득하고 다독여서 다시 잉글랜드 무대로 데려온 것도 퍼거슨 감독이었다. 


결국 퍼거슨 감독의 무한한 신뢰속에 자신의 잠재력을 만개하는 모습을 경기장에서 결과로 보이기 시작한 호날두와 유망주 시절 잉글랜드의 미래로 불린 루니가 나란히 23골씩을 터뜨린 맹활약속에 맨유는 2006/07시즌 첼시로부터 리그 우승 트로피를 되찾아오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맞이한 2007/08시즌, 퍼거슨 감독의 맨유는 리그에서 몇시즌간 접전을 벌였던 첼시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만나 승부차기 끝에 첼시를 꺾고 구단 역사상 세번째이자 퍼거슨 감독의 두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다. 


이날 결승전에서 선발출전한 선수 중에 1999년 트레블 당시 맨유에서 뛴 선수는 단 두 명, 폴 스콜스와 웨스 브라운 뿐이었다. 퍼거슨 감독이 9년 만에 완전히 다른 팀으로 또 한 번 맨유를 유럽 정상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8. 2009~2013년 20번째 리그 우승과 정상에서의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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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알렉스 퍼거슨 감독에 감사를 전하는 맨유 홈팬들)


2007/08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맨유의 스쿼드는 퍼거슨 감독이 맨유에서 만든 또 하나의 최고수준의 팀으로 손꼽힌다. 그 팀은 그 후로도 두 차례 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올랐고, 그 결승전에는 박지성도 출전했지만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데는 실패했다. 두 차례 다 상대팀은 과르디올라 감독의 바르셀로나였다. 퍼거슨 감독이 자신의 후계자로 과르디올라 감독을 원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또 한 번의 리그 3연패 후에 안첼로티 감독의 첼시에게 1시즌 우승을 내주고 곧바로 다시 리그 우승을 되찾은 맨유에게 아스널, 첼시에 이은 또 다른 경쟁자가 등장했다. 그들이 우승경쟁자로 등극한 이유는 첼시와 유사했으나 맨유에겐 다른 의미가 있는 경쟁자였다. 같은 맨체스터를 연고로 하는 팀, 맨시티였기 때문이다. 


2011/12시즌, 리그 최종전에서 연장 추가 시간에 터진 아구에로의 골로 골득실차에 의해 우승 트로피를 맨시티에 넘겨준 퍼거슨 감독은 아주 손쉬운 방법으로 바로 다음 시즌 리그 우승 트로피를 되찾아온다. 그들에겐 더 많은 골을 넣어줄 선수가 필요했고, 그렇다면 골을 제일 잘 넣는 선수를 데려오면 될 일이다. 그렇게, 벵거 감독이 리그 득점왕으로 키워낸 반 페르시가 맨유 유니폼을 입었다. 


2012/13시즌, 리그에서만 26골을 터뜨린 반 페르시의 활약 끝에 맨유는 지난 시즌 같은 승점을 기록했던 맨시티를 승점 11점 차이로 여유롭게 따돌리고 대망의 20번 째 리그 우승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 시즌을 끝으로 그는 2001년 크리스마스에 자신의 발을 걷어차며 은퇴하지 말라고 자신에게 윽박지르며 자신의 마음을 바꾸게 만들었던 그 아내 캐시를 위해 은퇴를 선언한다. 친언니의 사망이후 심적으로 힘든 날을 보내고 있던 아내를 위한 은퇴였다.  


퍼거슨 감독과 맨유, 맨유와 퍼거슨 감독이 함께 보낸 26년 사이에 맨유는 리버풀, 에버튼, 아스널보다도 리그 우승 횟수가 적었던 팀에서 잉글랜드 최다 리그 우승팀으로 변모해있었다. 


맨유는 올드 트래포드의 한쪽 스탠드의 이름을 '알렉스 퍼거슨 경 스탠드(Sir Alex Ferguson stand)'라고 바꾸고 경기장 주변의 길 이름도 '알렉스 퍼거슨 웨이'라고 칭하며 그들을 27년 사이에 잉글랜드 최정상의 클럽으로 만들어준 명장에 예우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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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 2=퍼거슨 감독 은퇴시점 잉글랜드 1부 리그 역대 우승 횟수. 퍼거슨 감독 부임 전과 비교해 1위가 리버풀에서 맨유로 바뀌었음이 확인된다.)


* 알렉스 퍼거슨, 왜 위대한가 


1) 끝없는 자기혁신과 리빌딩  


"한 때 혁명적이었던 사람들의 문제점은 그들이 한번만 혁명적이라는 것이다. 나머지 커리어 전체에서는 그 한 번과 똑같은 방식을 적용해갈 뿐이다." 


위에 인용한 문구는 최근 네덜란드 출신의 유명 피트니스 코치인 레이몬드 하이엔이 벵거 감독을 비판하며 언급한 말이다. 그의 말은 벵거 감독을 포함한 많은 현역 감독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는 동시에 퍼거슨 감독이 왜 위대했는지를 거꾸로 잘 보여주고 있는 단서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은퇴한 후에 오히려 더 추앙받는 환경적인 요소는 그가 EPL을 떠난 후 EPL을 대표하는 감독인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이나 첼시의 주제 무리뉴 감독, 또 현재 맨유를 이끌고 있는 루이스 반 할 감독이 모두 저마다의 한계에 봉착해서 그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 때 그들이 잘했던 것을 스스로 개혁해서 한 발 더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알렉스 퍼거슨의 가장 위대한 점은 이미 최정상에 오른 후에도 끝없이 스스로 혁신하고 달라졌다는 점이다. 시대가 변하면 축구도 변해야 한다. 그것을 가장 잘 실천한 사람이 바로 알렉스 퍼거슨이다. 그가 은퇴 후 하버드 대학교에서 강연을 하고, 그의 리더십을 다룬 책이 연이어서 출판되는 것도 바로 그런 그의 남다른 자기혁신과 리더십 때문이다. 


그의 그런 혁신적 사고가 피치 위에서 가장 잘 반영된 것이 그가 맨유를 이끄는 동안 끝없이 탄생한 위대한 팀들이다. 대부분의 명장들이 한 팀을 지휘하는 동안 하나에서 두 개의 위대한 팀을 완성하는 데 비해서 퍼거슨은 5년에서 10년 간격으로 세 개의 완성에 가까운 팀을 만들어냈다. 1994년에 더블을 달성했던 팀과, 1999년 트레블을 달성했던 팀, 2008년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했던 팀이 그것이다. 


맨유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그 각기 세개의 팀을 '클래스 오브 1994', '클래스 오브 1999'에 이은 '클래스 오브 2008'라고 칭한다. 물론, 퍼거슨 감독은 그 세 팀이 아닌 다른 팀들을 이끌고도 총 13회의 EPL 우승을 차지했다. 


2) 완벽한 팀 장악력 


"팀보다 큰 선수는 없다. 어떤 선수가 맨유보다 자신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선수는 맨유를 떠나야 한다."


위에 인용한 말은 퍼거슨 감독이 팀내 최고 스타였던 베컴을 팀에서 떠나보냈을 때 한 유명한 말로 그의 팀 운영에 대한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퍼거슨 감독이 27년간 맨유를 이끄는 사이에는 끝없이 많은 슈퍼스타들이 팀을 거쳐갔다. 그러나 퍼거슨 감독은 그게 누구더라도 그 선수가 팀에 도움이 되기보다 피해를 준다고 판단하는 순간 곧 그 선수를 팀에서 내보냈다. 


베컴을 레알 마드리드로 내보냈던 것 이상으로, 로이 킨을 방출한 일이 그의 그런 철학을 더 강하게 보여주는 일이었다. 퍼거슨 감독은 맨유의 핵심인 로이 킨의 능력을 아끼고 흠모했으나, 그가 맨유 TV와의 인터뷰에서 팀 동료들의 험담을 늘어놓는 등 계속적으로 팀 내 불화를 조장하자 가차없이 그를 내보내고 새로 선수단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런 퍼거슨의 결단력과 완벽한 팀 장악력 덕분에 맨유는 퍼거슨이 은퇴하는 날까지 선수단 내부의 분열 없이 우승이라는 목적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다. 로이 킨을 비롯해서 맨유를 떠난 후 퍼거슨 감독을 비판하는 '외부의 목소리'는 현재까지도 존재하지만, 어떤 외부요소도 퍼거슨 감독이 맨유에서 들어올린 13개의 리그 우승 트로피의 가치를 깍아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3) 결과로 말하다 


공격수는 골로 말하고, 감독은 성적으로 말한다. 퍼거슨 감독의 위대한 유산은 그가 감독으로서 이뤄낸 결과 때문에 더 빛을 보는 것인 동시에 그 결과가 있었기 때문에 완성될 수 있는 것이었다. 


축구의 세계는 빠르게 변한다. 그가 맨유를 이끌던 27년 사이에는 거시적으로 리그 자체가 바뀌었고(EPL의 출범), 그가 속한 팀의 구단주가 바뀌었다. 자신의 감독 재임기간 중 그렇게 큰 두가지 변화를 모두 겪으면서도 지휘봉을 놓지 않은 감독은 유럽 전체를 찾아봐도 흔치 않다.


극심하게 변하는 외부환경에도 불구하고, 퍼거슨 감독은 그 스스로가 끝없이 진화하며 자신에게 걸린 기대치 이상의 결과를 맨유에 가져다줬다. 진정한 명장이란 그렇게 크고 작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결과로 말하는 존재다. 


* 알렉스 퍼거슨의 맨유 재임기간 주요 연혁 


- 1986년 11월 6일 : 맨유 감독 취임 


- 1987/88시즌 : 브라이언 맥클레어 영입, 조지 베스트 이후 처음으로 리그에서 20골을 기록한 맨유 선수가 됨. 


- 1988/89시즌 : 맨유 유소년팀 출신으로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던 마크 휴즈 재영입. 


- 1989/90시즌 : 폴 인스, 게리 팰리스터 영입. FA컵 우승(맨유 감독으로서 첫 우승)을 차지하며 경질 위기 탈출.


- 1990/91시즌 : 데니스 어윈 영입. 마크 휴즈의 결승골로 FC 바르셀로나 꺾고 컵 위너스 컵 우승. 


- 1991/92시즌 : 피터 슈마이켈 영입. 리그 2위 차지(우승팀은 에릭 칸토나가 뛴 리즈 유나이티드 : 리즈의 마지막 리그 우승). 


- 1992/93시즌 : 에릭 칸토나 영입, 맨유 26시즌 만의 리그 우승. 


- 1993/94시즌 : 노팅엄 포레스트에 당시 최다 이적료를 지불하고 로이 킨 영입. 2시즌 연속 리그 우승 및 FA컵 우승(더블) 


- 1994/95시즌 : 에릭 칸토나 '쿵푸킥'사건(크리스탈 팰리스 전에서 자신에게 욕설을 한 관중에게 날라차기를 한 일) 발발. 칸토나 8개월 출장정지. 맨유 승점 1점차로 블랙번에 리그 우승을 내 줌. 


- 1995/96시즌 : 폴 인스, 마크 휴즈 등을 내보내고 유소년 출신들 중용 시작. 리버풀 레전드 앨런 한슨의 '어린이들로는 우승할 수 없다'는 비판을 깨고 3번째 리그 우승 달성. 리버풀과의 FA컵 결승전에서 칸토나의 결승골로 두 번째 더블 달성. 


- 1996/97시즌 : 4번째 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패배. 시즌 종료 후 칸토나의 은퇴 발표 


- 1997/98시즌 : 벵거 감독이 부임한 아스널에 더블을 내줌. 


- 1998/99시즌 : 리그와 FA컵에서 모두 아스널로부터 리그 트로피를 되찾아온 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에 2-1 역전승을 거두며 트레블 달성. 


- 1999년 : 영국 왕실, 알렉스 퍼거슨에 기사 작위 수여. 


- 1999/2000시즌 : 2년 연속 리그 우승. 


- 2000/01시즌 : 3년 연속 리그 우승.  


- 2001/02시즌 : 반 니스텔루이 영입. 이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의사를 발표. 아내 캐시의 설득으로 은퇴 번복. 


- 2002/03시즌 : 리오 퍼디난드 영입. 퍼거슨 감독의 맨유 부임 이후 8번째 리그 우승 달성. 


- 2003/04시즌 : 호날두 영입. 아스널에 리그 우승을 내주고(무패우승), FA컵 우승 달성. 첼시 감독직 제안을 거절.  


- 2004/05시즌 : 웨인 루니 영입. 첼시의 리그 우승. 


- 2005/06시즌 : 로이 킨 방출. 박지성, 반 데 사르, 에브라, 비디치 영입. 칼링컵(리그컵) 우승 차지.


- 2006/07시즌 : 9번째 리그 우승. 


- 2007/08시즌 : 10번째 리그 우승, 첼시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맨유의 세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유러피언컵 포함)이자 퍼거슨의 두 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 


- 2008/09시즌 : 11번째 리그 우승. 클럽 월드컵 우승. 챔피언스리그 준우승(VS 바르셀로나).


- 2009/10시즌 : 맷 버즈비 감독을 제치고 맨유 최장수 감독에 등극, 칼링컵 우승. 


- 2010/11시즌 : 퍼거슨이 맨유에서 거둔 12번째 리그 우승이자 맨유의 통산 19번째 리그 우승(리버풀의 18회 우승을 앞지름). 챔피언스리그 준우승(VS 바르셀로나)


- 2011/12시즌 : 맨시티에 골득실차로 리그 우승을 내줌. 무관의 시즌.


- 2012/13시즌 : 아스널로부터 리그 득점왕 반 페르시 영입. 본인이 맨유에서 거둔 13번째이자, 맨유의 역대 20번째 리그 우승 달성. 


- 2013년 5월 : 감독직에서 은퇴를 발표.


글. 네이버 칼럼니스트 이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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